[안현실 칼럼]

한국 자본주의 어디로 가나

입력 2017-05-18 18:43 수정 2017-05-19 00:57

지면 지면정보

2017-05-19A35면

"선거에서 이긴 소득주도 성장
그럴듯한 논리에 숨은 함정들
극심한 분배전쟁 막 올랐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탄핵이 가져다 준 승리만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공약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철저히 공부한 흔적이 묻어난다. 핵심 공약들을 ‘소득주도 성장’으로 엮어낸 정치적 센스나 체계성은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분배를 통한 성장’임에도 분배란 말이 쏙 빠졌다. ‘성장이냐, 분배냐’로 수세에 몰렸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차단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기업주도 성장’과 대비시키는 일거양득의 전략이다. 자유한국당이 딴지를 걸었어도, “너희의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 기업소득환류세제)는 뭐냐”고 했을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일자리를 소득주도 성장의 전면에 내세운 승부수도 그렇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처럼 정부지출을 통한 일자리 확대로 소득을 늘리겠다는 것이라 이론적으로도 진일보했다. 그 결과 폭발성 있는 공공 일자리 81만개, 공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도 그럴듯한 논리로 무장할 수 있게 됐다. 청년실업이 비상인데 정부라도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반대할 정파가 없다는 점도 간파했을 것이다. 어쩌면 공공개혁을 외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일자리를 공공에 떠넘기는 위선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을지도.

정치 감각도 돋보였다. 복지 공약조차 구매력을 높여 경제를 자극한다는 우파적 논리로 대응했고, ‘임금’ 대신 ‘소득’이란 말로 자영업자도 끌어들였다. 최저임금 인상,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문제, 자영업자 보호 등이 모두 소득주도 성장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기업주도 성장’이라면 곤란했을 재벌개혁 공약과도 양립이 가능해졌다고 뿌듯해 하지 않았을까.

공부하는 사람은 이기기 어렵다는 말이 맞다. 그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소득주도 성장 앞에 제기된 비판이라곤 “정부가 다 할 수 있나” “재원은 어디서 나오나” 등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풀릴 경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선거에 이겼지만 집권 전과 집권 후 소득주도 성장이 갖는 무게감은 비교할 수 없다. 더는 ‘정부 실패’가 없길 바라는 이유도 한국 경제가 시행착오를 반복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단기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은 제쳐두자. ‘일자리→소득→소비→투자→일자리’라는 선순환은 과연 실증된 건가. ‘소득→소비’는 둘째 치고 ‘소비→투자’는 특히 이 의문에 답해야 한다. 그렇게 이어질 경제였다면 사회주의자란 말까지 들었던 케인스조차 투자를 두고 왜 ‘야성적 충동’을 토로했겠나. ‘오스트리아학파’ ‘시카고학파’ ‘공급 사이드 경제학’ ‘슘페터학파’ 등은 등장하지도 않았을 테고, 국가마다 경제발전 단계나 복잡한 정책 조합을 고민할 이유도 없다.
‘혁신주도 성장’을 들고나왔음에도 ‘투자부진론’에 시달렸던 노무현 정부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진짜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건 이 부분일지 모른다. 한쪽만 보고 전부라고 믿는 것처럼 경제에 위험한 것도 없다.

정규직·비정규직, 대·중기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더 나은 일자리’ 주장이 안고 있는 치명적 함정은 또 어떤가. 정부가 복지를 통한 2차 분배를 넘어 시장의 1차 분배까지 통제하겠다면 어찌 되겠나. 노동개혁 실패, 낮은 중소기업 생산성 등 원인은 제쳐둔 채 결과의 인위적 교정이 몰고 올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생산성 등에 따른 ’내생 변수’가 아니라 ‘외생 변수’가 되고, 대·중기 이익 분배율이 ‘정책 변수’가 된다고 해 보라. ‘자본축적’ ‘투자’ ‘성장’ 없는 자본주의가 굴러갈까. 벌써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분배 전쟁’이 시작됐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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