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을 외면한 가학적인 경제상황 인식
정책은 틀어지고 사고의 균형 무너질 뿐
올바른 팩트 분석이 스마트 투자 첫걸음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사장 >
인간은 심리적으로 극단에 끌린다는 연구가 있다. 그래서 언론에는 위기란 단어가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날이 갈수록 더 자극적인 단어들이 출현한다. 특히 우리 경제를 묘사하는 표현은 유난히 자기혐오적이고 가학적인 용어가 난무한다. 가령 소비침체란 말이 밋밋하니까 ‘소비절벽’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88세대’ ‘삼포세대’는 이미 흘러간 유행어다. 최근에는 사회계층화를 대변하는 ‘흙수저, 금수저’ 논란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공인인증서 같은 용어가 됐다.

그러다 보니 사실(fact)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는 경제상황 인식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개념조차 모호한 ‘체감 경기’니 ‘불황형 흑자’를 운운하면서 우리 경제를 ‘디스’하기 바쁘다. 물론 우리 경제가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비관적인 진단을 내리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건강하며 경기회복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정부는 엉뚱한 정책을 펴고 국민의 혈세와 자원은 낭비된다.

우선 요즘 많이 거론되는 ‘소비절벽’이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국내 소비가 줄고 있는 것은 맞다. 대신 우리 국민들의 해외 소비가 그보다 더 많이 증가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 소비를 합치면 지난 5년간 국민 1인당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결국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는데 ‘소비절벽’이라고 명명한다. 지난 8년 사이 해외 여행객이 900만명에서 2200만명으로 증가한 것이 국내 소비 감소의 진짜 원인이다. 이런 사실은 국내 소비를 늘리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할지에 대한 시사점도 보여준다.

‘불황형 흑자’와 ‘불황형 이익’이란 단어도 문제가 많다. 작년 한국 무역흑자는 사상 최대다. 또 올해 들어 수출이 5년 만에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1분기 상장회사 영업이익도 사상 최초로 40조원을 돌파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은 불황형 흑자고, 불황형 이익이다. 한편 작년 가구당 평균 흑자가 사상 최초로 월 100만원을 돌파했다. 여기에도 ‘불황형’ 흑자라고 제목을 달았다. 2003년 50만원의 흑자가 13년 사이 100만원을 넘었다. 13년간 해마다 꾸준히 증가한 숫자를 ‘불황형’이라고 정의한다. 가계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없다는 믿음(?)이 너무 세다. 물론 평균 수치이기 때문에 이게 바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파이낸셜타임스가 얼마 전 보도한 지니계수로 측정한 부의 평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인 벨기에, 덴마크 다음으로 한국이 차지한 것은 요즘 유행하는 가짜 뉴스인가? ‘체감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한국은 빈부 격차가 세계 최고여야 하고 경제는 10년째 불황이어야 한다. 또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넘어 서민들은 파산으로 몰려야 한다. 이 와중에 가계 금융자산 3600조원이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또 개인자산 즉, 부동산과 금융자산 합계가 우리 국내총생산(GDP)의 여덟 배 정도 된다는 얘기는 더욱 하기 어렵다. 한국에 등록된 자동차 대수가 2200만대를 넘었다. 2.3명당 한 대로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업률은 4% 부근이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특히 의료보험은 세상에서 최고다. 그래도 비관론자들은 실업률은 잘못 측정된 것이고 청년실업은 살인적이고 ‘체감’ 경제는 최악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섹터별 혹은 세대별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전과목에서 만점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게 좋으면 저게 나쁠 수 있는 게 세상이치다. 그런데 한쪽 면만 지나치게 부각하다 보면 정책이 틀어지고 사고의 균형이 무너진다. 무엇보다도 사기에 영향을 미쳐 ‘자기예언 실현형’ 불황이 진짜 온다.

‘오리처럼 생기고 오리처럼 걸으면서 오리처럼 꽥꽥 짖는다면 그것은 오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그럼에도 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요즘 세태다. 공포 마케팅이 넘친다. 팩트를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스마트 투자의 첫걸음이다.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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