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집을 비롯, 미국 내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은 이르면 5월부터 메뉴판에 칼로리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비만과의 전쟁’ 일환으로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열량 표시 의무제를 조만간 실시키로 하고 관련 규정 정비를 마쳤다고 한다. 최소 20곳 이상에 매장이 있는 식당이나 피자, 햄버거, 치킨 등 체인점이 대상이다. 극장과 놀이공원, 편의점 내 식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FDA가 만든, 100페이지가 넘는 규정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게 한둘이 아니다. 피자의 경우 조각당 칼로리를 표시하라고 돼 있다. 문제는 피자는 토핑이 무엇이냐, 페퍼로니 소시지를 몇 개 얹느냐, 치즈는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쓰느냐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조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도미노피자의 경우 이론상 3400만가지 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모든 조합의 칼로리를 계산해 제시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FDA는 칼로리 표시 글자의 크기와 색깔까지도 일일이 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을 위반하면 벌금과 징역은 물론 집단소송 대상도 될 수 있다. 더 웃기는 건 피자 고객 대부분이 온라인이나 전화로 주문하고 있어서, 열량이 적힌 메뉴는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업계는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괴롭고 소비자는 관련 정보를 얻지도 못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질 참이다. 탁상행정, 규제 일변도 행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비슷한 예는 국내에도 많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은 연간 1t 이상의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업체가 유해성 자료를 첨부해 등록하도록 한 것이지만, 비용 부담을 못 견딘 중소기업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비만을 막자거나 가습기 살균제 사고 재발을 막자는, 좋은 취지로 출발한 규제들이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규제는 자가증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묶으면 또 다른 규제가 필요하고, 예외까지 규정하다 보면 결국은 엄청난 덩어리 규제가 생긴다. 규제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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