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응 완충장치 역할하는 일본 대학
한국선 대학졸업이 취업에 굴레되기도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같은 말이라도 시대 조류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지곤 한다. 이미지가 변한 대표적인 말이 ‘대학’, ‘대학생’일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개는 어려서부터 일터로 향해야 했기에 대학 진학률이 낮았다. 당시 대학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소득수준도 높아졌고 저출산과도 맞물려 대학교육도 대중화됐다. 격세지감이다. 이젠 순위매기기 폐단이 나타나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묻기조차 어려워졌다. 일본도 대학교육이 대중화됐지만 그 실태는 한국과는 현저히 다른 양상이다. 필자의 경험도 곁들여가며 교육방식, 학생생활, 업무취향 면에서 한일 간에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먼저, 양국의 대학 교육방식에서 보이는 큰 차이는 일본엔 도제(徒弟)식 교육이 있으나 한국엔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거의 모든 대학에는 2학년이나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자신이 지도받고 싶은 교수를 선택해 수강하는 ‘제미’ 수업이 있다. 제미라는 말은 세미나(seminar)의 독일식 발음 ‘제미나르’에서 앞 두 글자를 따온 말이다. 이름의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제미 수업은 보통 서로 돌아가며 발표하는 세미나식으로 진행된다. 제미를 통해 지도학생의 성향을 파악하고 심층학습 및 논문작성 지도를 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지도교수를 정해 놓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대학교육에서 차지하는 제미 비중은 매우 크다.

다음으로 학생생활을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부모에 대한 의존이 적다. 수업료는 부모님이 대준다 해도 생활비는 대체로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충당한다. 아르바이트 외에도 동아리 활동(일본에선 ‘부(部) 활동’이라 한다)도 하기 때문에 공부에 할애하는 시간은 한국 학생보다 적은 편이다. 취업활동 시 자기소개서에 동아리 활동을 쓰게 되고 면접에서 화제로 떠오르기에 대부분 열심히 활동한다. 일본 기업들도 신입사원 채용 시 학점 평점(評点)보다는 얼마나 협조적인 자세로 임할 사람인가에 보다 높은 비중을 둔다. 예컨대 테니스부에서 주장(主將)을 했다면 큰 가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단체생활을 잘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높은 학점 따기, 영어 공부나 자격증 취득에 엄청난 시간을 들이는 한국 대학생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지막으로 업무취향을 볼 때 한국보다 일본이 그룹 일에 협조적이다. 일본 학생들은 안정된 기업에서 풍파없이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 한다. 독립해 새로운 일 개척하기를 몹시 두려워하며 이미 형성된 그룹 질서 지켜가기를 선호한다. 외톨이로 남게 된다는 심적 두려움이 자연스레 그룹 내 협조를 유발하지만 패기는 사라지고 있다. 기대수준을 낮추고 임하기에 취업률은 높으나 국가경제 수준에 비해 개인소득은 많지 않다. 대개의 일본인은 소득이 적다 하여 겉으로 불평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싶어 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의 대학이 곧바로 도제식(제미) 수업을 도입하고 일본 대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게 하고, 짜여진 틀에 머물러 있으라는 뜻은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본 나름의 교육방식과 기업풍토에 관한 특징 이해와 그 교훈이다. 일본의 대학은 사회적응을 위한 완충장치(buffer) 역할을 하면서 인재를 공급하고 일본 기업은 대부분을 흡수한다. 한국에선 대학 나왔다는 체면이 취업 선택의 굴레로 작용하기도 한다. 긴 호흡의 대학교육으로 인재를 키워가고 취업 기반을 넓혀가야 할 텐데 한국이 너무 조급해하고 있는 듯하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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