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千一夜話)는 무서운 절대 권력자와 아름답고 슬기로운 젊은 여성이 풀어내는 아랍세계의 방대한 설화집이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처녀를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처형해 버리는 잔인한 왕을 상대로 지혜로운 세헤라자데는 1001일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결국 왕의 마음을 바꾼다. 세헤라자데의 관능미는 같은 제목의 림스키 코르사코프 교향악곡으로도 유명하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지배하는 샤리아르왕이 최고 권력자 술탄의 이미지다.

술탄은 원래 ‘통치자’ ‘권위’를 의미하는 아랍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교의 종교적 최고 권위자 칼리프가 부여하는 정치 지배자의 호칭으로 바뀌었다. 875년 바그다드 일대의 아바스왕조에서 무슬림 통치자를 지칭하는 말로 처음 쓰인 뒤 셀주크튀르크를 거쳐 오스만튀르크에서 지배자의 칭호로 굳어졌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형성한 오스만튀르크는 건국 때부터 술탄의 나라였다. 1923년 케말 파샤(아타튀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기까지 700년 이상을 술탄이 지배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빛나는 이스탄불 구도심은 술탄의 권위와 옛 제국의 영화를 가늠케 해준다. 라틴어 카이제르(카이사르)에서 비롯돼 제정러시아 등 동유럽의 슬라브 국가에서 군주를 일컬었던 ‘차르’와 비슷한 지칭이 술탄이다. 오늘날에도 오만과 브루나이는 정부 형태로 술탄제를 유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의 일부 부족 지도자도 술탄으로 불린다.

엊그제 국민투표에서 51.3%의 찬성률로 대통령중심제로 개헌이 가결된 터키를 두고 다수 언론이 ‘21세기 술탄 등극’ ‘술탄의 부활’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터키의 철권 통치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3)이 앞으로 2029년까지 권력을 장악할 길이 트였다는 것이다. 의원내각제 시절 총리를 맡은 2003년부터 보면 26년 장기집권이 된다. 새 헌법의 대통령 권한이 입법·사법에까지 걸쳐 막강한 데다 초강경, 강성의 ‘에르도안 스타일’도 술탄의 이미지에 한몫하고 있다.

2029년까지 집권한 뒤 임기만료 직전에 조기 대선·총선을 치르면 2034년까지 보장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 그래도 터키 내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다 EU(유럽연합)와 충돌도 불사하는 외교 행보를 보면 국제정치 무대에 또 한 명의 ‘스트롱 맨’ 부각이 예고된 셈이다. 대통령과 총리를 넘나든 푸틴을 비롯해 한반도 주변 4강국도 스트롱 맨 시대다. 필리핀도 이쪽이다. 한국 정치는 어떤 쪽으로 갈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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