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폰 싸게 줘, 요금제 추천 좀…' 친구·가족한테 시달려…"저 폰 판매원 아니에요ㅠㅠ"

입력 2017-04-17 22:02 수정 2017-04-17 22:02

지면 지면정보

2017-04-18A30면

통신사 다니면 요금제 잘 안다?
판매직과 업무분야 등서 차이…세세한 부분까지는 잘 몰라

5G·AI·IoT 등 업무영역 확대
새 서비스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역동적인 회사에 '자부심' 커

고객 뺏고 뺏기는 통신 삼국지
가입자 한 명이라도 더…'사활'
'동종업계' 대신 '경쟁사'로 불러

KT에 근무하는 박모 과장(34)은 친구들 모임에 나갈 때마다 통신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질문 세례를 받는다. “휴대폰 싸게 사는 법 좀 알려줘!” “어떤 요금제가 제일 좋니?” “너한테 가입하면 싸겠지?” “액정 깨졌는데 고쳐줘” 등. 하지만 박 과장은 회사에서 영업을 해본 적이 없어 휴대폰 판매와 요금제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알지 못한다. 대답할 수 없어 민망해질 때면 ‘나 통신사 다니는 것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 과장이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통화나 데이터가 무제한인 법인폰으로 ‘와이파이’를 켜주는 게 전부다.

통신사 직원들은 주변 사람들 탓에 고충이 많다. 일반적으로 통신사에 다니면 요금 상품이나 스마트폰에 대해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업무 특성상 근무 강도도 높은 편이다. 남들이 쉴 때 더 바쁘게 일할 때가 많다. 물론 한국 정보통신기술(ICT)을 이끈다는 자부심은 있다. 통신업체에 근무하는 김과장 이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 휴대폰 팔려는 거죠?

“애들한테 휴대폰 팔려고 하는 거죠?” SK텔레콤에 근무하는 김모 매니저(32)는 시골마을을 찾아가는 이동형 체험관 ‘티움 모바일’ 업무를 담당할 때 툭하면 이 같은 얘기를 듣곤 했다. 군청이나 읍사무소, 교육청 등에 협력을 요청해야 할 때마다 SK텔레콤 직원이라고 소개하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었다.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휴대폰을 파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꿈과 경험을 판다”고 구구절절 해명한 뒤에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이모 매니저(31)는 처음 취직했을 당시 친척들에게 통신사에 다닌다고 알렸다가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하철역 내 매장에서 근무하는 거냐”며 측은해하는 답이 돌아와서다. 이 매니저는 “SK텔레콤에서 일한다고 하면 무조건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심지어 소개팅이나 선을 봐도 휴대폰 판매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직원들은 친구나 친척들이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계열사인 LG전자와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조모 대리(32)는 “친척들이 칭찬이랍시고 ‘이번에 (LG전자) G6 잘나왔던데…’라는 말을 할 때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이 통신사는 다른 곳을 쓰면서 LG전자 휴대폰의 스펙(부품 성능) 등을 자주 물어봐 귀찮기도 하다”고 말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 직원들은 대부분 법인폰을 들고 다닌다. 주변 사람들은 모바일 시대에 최대 복지를 누리고 있다고 부러워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휴대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와서다. “주말에 법인폰을 꺼놓으려면 어차피 개인용 휴대폰을 하나 더 개통해 다녀야 한다”고 통신업계 김과장 이대리들은 말한다.

업무량은 많지만 자부심도
SK텔레콤 네트워크 관리 부서에 근무하는 류모 매니저는 ‘설날’ ‘추석’ 등 남들 쉴 때가 더 바쁘다. 명절이나 벚꽃축제, 불꽃놀이 등 통신량이 급증하는 시기가 되면 되레 현장에 이동형 차량 기지국 등을 배치하는 등 일이 더 많아진다. 비상대기 인력도 크게 늘어난다. 류 매니저는 “때로는 남들이 쉴 때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 허모 매니저는 “통신사에 근무하면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과 용어 등을 익히기가 쉽지만은 않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현장 마케팅팀 직원들은 요금제와 부가서비스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5세대(5G) 네트워크, 인공지능(AI), 커넥티드카(스마트카) 등 다양한 영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공부해야 할 게 갈수록 늘고 있다. 허 매니저는 “회사에서 선보이고 있는 AI나 자율주행차 등에 대해 지인들이 물어올 때마다 제대로 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회사가 크고 다루는 분야가 다양하다 보니 알아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에 근무하는 박모 과장은 과거엔 통신사에서 다룰 서비스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상품들이 줄줄이 출시되는 것을 보면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업종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박 과장은 “가정용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부터 요즘 핫한 AI, 빅데이터 서비스까지 다양한 업무와 주제를 익히곤 한다”며 “회사가 매우 역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입에 붙은 통신사 전문용어

통신사 직원들은 전문용어도 많이 쓴다. LG유플러스에 다니는 김모 대리는 신입사원 때 회식 장소를 잡아 팀장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그 식당은 아르푸 얼마나 잡으면 되나”라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엔 뭔 소린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그 뜻을 알게 됐다. 아르푸는 영어 약자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로, 1인당 예산을 얼마나 잡으면 될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김 대리는 요즘엔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아르푸’란 말을 쓰고 다닌다. 그는 “편의점에서 2+1 상품을 보고 친구에게 ‘동시 판매에 결합할인 되네’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했다.

KT에 근무하는 정모 대리는 신입사원 때 회사 사람들이 ‘현아’와 ‘표인봉’이라는 연예인 이름을 자주 써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총알이 몇 개 장착됐느냐”는 말도 듣곤 했다. 뒤늦게 표인봉은 ‘페이백’(불법 보조금), 현아는 ‘현금 완납’, 총알은 ‘혜택’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모두 휴대폰 유통매장에서 은밀히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쓰는 은어들이다.

통신사는 치열한 경쟁 탓에 ‘동종업계’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KT에 근무하는 이모 과장은 “건설사에 다니는 친구 하나는 다른 건설사를 얘기할 때 동종업계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어색한 느낌이 든다”며 “통신사끼리는 보통 경쟁사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통신업계는 서로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출혈 경쟁’도 심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사업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한다. 이 과장은 “가입자를 한 명이라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업계의 타고난 숙명 같다”고 말했다.

안정락/유하늘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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