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특파원 뉴욕 sglee@hankyung.com
지난 12일 오전 10시 뉴욕 오토쇼가 열린 맨해튼의 재비스컨벤션센터.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전시장을 둘러본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그와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정 부회장이 어디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어렵사리 정 부회장을 ‘발견’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캐주얼한 셔츠에 재킷도 걸치지 않았다. 신발은 운동화였다. 여느 관람객과 같은 차림으로 두 시간가량 거의 혼자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전시된 자동차를 꼼꼼히 살폈다.

뉴욕은 세계 어느 곳보다 직원들이 총수 의전을 하기가 까다로운 곳이다. 예측할 수 없는 교통상황 때문에 비즈니스 미팅에서부터 가벼운 식사를 위한 동선을 짜는 것조차 쉽지 않다.
수행비서 없이 ‘알아서’ 해외출장을 다니는 정 부회장의 스타일은 현대차의 의전 고민을 크게 덜어줬다. 그는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인 데다 미국에서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쓸데없는 의전을 오히려 불편해한다.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쇼 ‘CES’에서도 역시 캐주얼 차림으로 혼자 돌아봤다. 이전 세대 총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지만 현대차 직원들의 의전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현대차는 이날 오후 1시 미디어를 대상으로 쏘나타 발표회를 열었다. 하지만 맨 앞쪽 좌석은 현대차 직원들이 미리 차지했다. 이곳에는 정 부회장과 임원들이 자리 잡고 발표회를 지켜봤다. 행사가 끝난 뒤 간단한 소감을 묻고자 다가섰더니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가로막았다.

물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현지 경영진이 중심인 행사에서 정 부회장이 나서는 게 어색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다음 일정이 빠듯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만난 정 부회장의 한마디를 기대한 기자들에게는 현대차의 의전문화가 총수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심기 특파원 뉴욕 sglee@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