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해외에 100억달러 넘게 원조했죠
EDCF 설립한지 올해로 30년…국격 높아져

<대외경제협력기금>

광복 직후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경제 강국이 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 수출액은 세계 8위다. 자원이 빈약한 작은 나라가 이룬 대단한 성과다. 해외 지원을 받던 나라가 지원하는 나라가 된 것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는 국제 원조의 힘이 컸다. 우리나라는 ‘원조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대표적 나라다.

한국 600억달러 원조로 경제건설

6·25전쟁이 끝난 뒤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한국)가 재건되는 데는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원조를 간절히 요청하는 편지를 쓴 것으로 미뤄봐도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 바탕에는 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있다. 우리나라가 1945년부터 약 50년간 지원받은 해외 원조 규모는 대략 600억달러(약 72조원)에 달한다.

특히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9년에는 800억원의 원조를 한꺼번에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런 해외 원조는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결정적인 ‘마중물’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그 돈으로 공장을 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기계를 사들였다. 해외 원조는 한국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을 줬다.

원조 공여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

한국은 1995년 세계은행의 원조 대상국에서 빠졌다. 이어 이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2009년에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해 OECD 내에 설치한 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개발원조위원회) 24번째 회원국이 됐다. 국제사회에 한국은 ‘원조 공여국’임을 선언한 셈이다. 국내적으로는 1987년 개도국들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고 이들 국가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외경제협력기금을 설치했다. 올해로 30년이 된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의 해외 원조액(공적개발원조)은 100억달러를 넘는다. 지난해에만 19억6000만달러를 지원했다. 공여액 순위는 세계 16위다. 해외 원조액은 2010년(11억7000만달러)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원조액을 꾸준히 늘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전 세계에서 해외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들을 ‘원조 공여클럽’으로 부르는데, 이는 DAC에 가입한 국가를 일컫는다. 지금까지 남의 나라 원조를 받다가 잘살게 돼서 원조를 되갚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를 빼고는 받는 나라는 계속 받고, 주는 나라는 계속 주고 있다는 얘기다.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형태로 지원

1991년 설립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의미가 크다. KOICA는 네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4개국에 44명의 봉사단을 보내면서 해외 원조를 시작했다.
점차 해외 봉사단과 지원금액이 커지면서 한국의 해외 지원을 상징하는 단체가 됐다. 봉사단은 캄보디아에 3모작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페루에 도자기 학교를 지어주고, 필리핀에 첨단 정미소를 지어주는 등 다양한 지원활동을 해 왔다. 지난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는 19억6000만달러로 전년보다 2.6% 늘었다.

지난해 공적개발원조 가운데 우리나라가 해당 국가에 해당 자금과 물자를 직접 지원하는 양자원조는 78.3%(15억4000만달러),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다자원조는 21.7%(4억3000만달러)였다. 양자원조 중 무상원조는 9억8000만달러, 유상원조는 5억6000만달러였다. 지역별로는 아시아가 전체 지원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고, 아프리카가 뒤를 이었다. 분야별로는 교육이 가장 많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NIE 포인트

우리나라가 원조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바뀐 과정을 정리해보자. 우리나라 해외 원조는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 토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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