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아파트엔 이름 모를 미장공의 예술혼이 흐르네

입력 2017-04-15 18:00 수정 2017-04-15 18:00

지면 지면정보

2017-04-15A22면

Life & Style

아파트 벽면에 부엉이·비둘기·나무 그림 있어
지하시장엔 지드래곤 단골 분식집 눈길

낙원상가 지하시장으로 연결되는 출입구(위에서 시계방향으로), 1969년 당시 표기법을 따른 ‘낙원삘딍’ 현판, 한 미장공이 ‘낙원’을 떠올리며 만든 부조.

낙원상가는 견뎌낸 시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선 건축이 특이하다. 필로티 건물처럼 1층이 뚫려 있다. 이 사이를 왕복 4차로 삼일대로가 지난다. 건물 지하에 낙원지하시장이, 2·3층 낙원악기상가, 4층 실버영화관 야외공연장 합주실, 6층부터 15층까지는 낙원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출입문은 여덟 개. 50년이 넘은 건물이니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 건물은 안전진단에서 매년 B등급 이상을 받고 있다. 낙원상가 사람들은 한강대교 아래서 채취한 고품질 모래와 자갈로 시공한 게 그 비결이라고 말한다.
증거도 있다. ‘낙원삘?’이라는 현판이 있는 2번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 세 개를 만날 수 있다. 그 중 상가로 연결되는 맨 왼쪽 것을 타면 벽면에 유리창이 나 있다. 올라가는 동안 이 창문을 통해 건물의 속살, 즉 내장재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조약돌과 색색의 모래가 투박할 정도로 단단하게 뭉친 채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름 모를 미장공이 남긴 거대한 예술작품도 있다. 149가구가 사는 낙원아파트는 중앙이 뻥 뚫려 있다. 중정형 ㄷ자 설계를 적용했다. 아파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내려 하늘을 올려다보면 양쪽 벽면에 예사롭지 않은 부조가 나타난다. 부엉이와 비둘기와 나무와 평화로운 사람들이 모두 등장하는 아름다운 작품. 1969년 건물을 지을 당시 미장공 한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도구만을 사용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끝내 누군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미장공이 지닌 감각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은 사치인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낙원상가 지하시장도 이색적이다. 1인당 2000~5000원만 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정겨운 가게들은 늘 만석이다. 엄마김밥과 일미식당이 유명하다. 일미식당은 청국장과 오징어볶음, 갓 지은 밥으로 승부하는 곳. 빅뱅의 지드래곤이 단골이다. 낙원지하시장에선 시간을 잊은 듯한 풍경에 놀라고, 그 시절 그대로인 가격에 또 한 번 놀란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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