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는 지난 9일 끝났다. 하지만 정작 벚꽃이 만개하는 때는 이번 주다. ‘윤중로(輪中路)’를 따라 1800여그루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윤중로는 좀 고약한 단어다. 그 모태는 윤중제(輪中堤)다.

‘여의도 윤중제 축제공사 낙찰 대림산업 9190만원.’ 1968년 1월6일자 한국경제신문(당시 현대경제일보)은 짤막한 낙찰공고 기사를 전했다. 우리말에 없던 ‘윤중제’가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게 이때다. 곧바로 2월20일 여의도 제방공사에 들어가 불과 100일 만인 6월1일 준공식을 열었다.
정부는 1967년 한강종합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강력한 산업화 정책으로 연 10%대의 고도성장을 해가던 시절이었다. 여의도 개발은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홍수가 지면 여의도가 침수되기 때문에 물막이 공사가 제일 시급했다. 윤중제는 그때 일본에서 수입한 말인데 껍데기는 우리말을 뒤집어썼다.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그 둑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일본에서 ‘와주(輪中)’라 한다. 그 둑은 ‘와주테이(輪中堤)’다. 이것을 빌려다 우리 한자음으로 읽어 ‘윤중제’라 이름 붙였다. 그러니 말은 있어도 뜻은 알 수가 없다. 정식으로 도로명이 된 것은 1972년이다. 서울시에서 가로명을 정비하면서 여의도 외곽을 둘러싼 제방을 윤중제로 이름 붙였다. 자연스레 그 위의 길은 윤중로로 불렸다.

1980년 윤중초교, 1982년 윤중중학교가 잇따라 개교하면서 윤중은 우리말에 스며들었다. 국립국어원도 이를 반영해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을 내면서 윤중제를 표제어로 올렸다. 1984년엔 여의도 한가운데를 잇는 마포대교와 서울교를 중심으로 윤중로를 나눠 동쪽은 여의동로, 서쪽은 여의서로로 다시 바꿨다. 이것이 공식명칭이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구간은 여의서로 쪽이다. 따라서 윤중제니 윤중로니 하는 것은 이미 수명을 다한, 버린 말이다. 하지만 한번 잘못 새긴 말은 고치기가 힘들어 여전히 우리 입에 오르내린다.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은 우리말로 방죽이다. 그 위에 난 길이니 방죽길이다. 사전에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여의서로가 어감이 딱딱하다면 방죽길은 정겹다. 내친김에 여의도도 토박이말인 너섬이라 하면 더 좋겠다. 한강 가운데에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 하다가 줄어서 너섬이 됐다(여의동 홈페이지). 주말엔 여의도 윤중로보다 너섬 방죽길을 걷고 싶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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