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외교문서' 23만쪽 공개

중국과 수교 등 관계개선 위해 '모란 구상' 비밀 프로젝트 추진
김일성 '부자 세습' 위해 소련 방문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5월 방한한 조지 슐츠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는 장면. 연합뉴스TV 제공

“우리에게 핵무기 세 개만 있다면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이다. 물론 우린 절대 사용하지 않겠지만.” (외교부가 작성한 ‘에드워드 라우니 미국 대통령특사 접견’ 문서 중 1986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 발언)

“주프랑스 한국대사 부부가 유네스코 사무총장 주최 티파티에 참석했는데, 그간 냉담했던 중국의 유네스코 주재 대사가 의외로 말을 걸어왔다.” (1981년 6월30일자 외교부 문서)

한국 정부가 1980년대 중반 당시 수교를 맺지 않은 상태였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 비밀 프로젝트 추진을 비롯한 각종 외교 비사(秘史)가 담긴 외교 문서가 약 30년 만에 공개됐다. 외교부는 11일 1986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474권(약 23만쪽)의 외교문서를 원문 해제와 함께 공개했다. 해당 문서 원문은 서울 서초동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볼 수 있으며, 홈페이지(diplomaticarchives.mofa.go.kr)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으로도 볼 수 있다.

◆‘모란 구상’과 ‘군산항 채널’

1980년대 중반은 미국과 옛 소련 간 냉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관계 개선에 나섰고, 북한과 옛 소련은 한층 더 긴밀해졌다. 중국은 북·소 관계 강화를 우려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 같은 상황을 외교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1986년 초부터 ‘모란 구상’을 협의한 것으로 이번 문서에서 드러났다. 1986년 5월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작성된 ‘한·미 외무장관 회담 별도 자료’의 ‘모란 구상 협의 결과’(2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이상옥 당시 외무차관과 데이비드 램버트슨 당시 주한미국 공사가 “미국은 북한 학자의 미국 입국, 사교 행사에서 미국과 북한 외교관의 접촉 등부터 시작하고, 한국은 중국과 직접 교류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모란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적시되지 않았다. 다만 이 프로젝트가 북한을 의식한 중국이 한국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이 북한에 유연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취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 주재 한국 총영사관과 중국 신화통신 홍콩 지사가 이른바 ‘군산항 채널’로 불리며 한·중 간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한 사실도 공개됐다. 1985년 3월 중국 어뢰정의 전남 신안 앞바다 표류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한국에도 핵무기 세 개만 있으면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해오는 원리는 같은 것”이라며 핵무기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단임제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김일성의 조총련 배후 조종

북한이 재일동포 2, 3세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교육 공작을 벌인 정황도 드러났다. 김일성 정권은 조총련을 통한 재일동포 교육사업에 1957년부터 1984년까지 약 30년간 350억엔(약 3557억원)을 일본에 송금했다. 김일성이 부자 세습체제를 인정받기 위해 1986년 옛 소련을 방문했다는 내용도 나왔다.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초청으로 1986년 10월22일부터 26일까지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했다. 한·미 외교라인에선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도록 고르바초프를 설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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