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사진 최혁 기자

왜 이걸 틀렸을까. 망친 시험은 늘 그렇다. 돌이켜 보면 알고 있던 정답이다.

허구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진단한 한국 야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달 초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패의 원인을 그동안 노출된 문제를 무시한 결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17 MBC스포츠플러스 야구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한국이 WBC 우승을 노리긴 힘들 것이란 견해부터 도쿄올림픽 위기론까지 심각한 전망을 내놓았다. WBC 부진이 900만 관중을 바라보는 KBO리그 흥행에 악영향이 될 것이란 야구계의 우려보다 한 발 더 들어간 셈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날 행사가 끝난 뒤 허 위원을 만났다.

-WBC를 통해 본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은 많이 약해진 듯하다.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은 이상 징후로 보이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가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이 걱정이다. 이대로 도쿄에 가선 안 된다. 베이징올림픽은 프로야구 인기의 터닝포인트였지만 도쿄올림픽은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는 위기가 될지도 모른다.”

-대표팀 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투수 기근이다. 단기전은 투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류현진과 김광현의 뒤를 이을 대형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투구수 제한이 있는 WBC는 그런 투수들이 많이 필요하다. 냉정하게 앞으로 WBC 우승을 노리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마운드가 약점으로 지적됐던 프리미어12에선 우승했는데.

“당시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우승으로 모든 게 덮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야구의 저변이 드러났다. 야구계가 몰랐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개혁의 동기가 없었다면 차라리 지금이 기회다. 참사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한국 야구를 진단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화위복 삼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최근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된 투수들 가운데 성공한 사례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프로에 오자마자 수술대에 누웠다가 사라진다.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아마추어부터 선수들의 혹사와 부상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아마야구에서 나무배트를 쓰고 있지만 예전대로 다시 알루미늄배트를 사용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타자의 방망이와 투수의 부상은 어떤 관계인가.

“알루미늄 배트는 반발력이 좋아 장타가 많이 나온다. 당연히 강한 직구를 던지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쓰는 나무배트는 반발력이 적어 투수들이 겁내지 않는다. 변화구를 던져도 장타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힘으로 맞붙을 필요가 없다 보니 변화구 위주의 기교파 야구를 구사하게 된다. 요즘은 리틀야구에서도 변화구를 던진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변화구를 던질수록 부상 위험은 높아진다. 이렇게 프로에 진출하니 부상을 달고 살 수밖에 없고 강속구를 가진 대형투수로 크지도 못한다.”

다행히 허 위원을 만난 이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아마야구 투구수 제한 등 선수 부상 방지를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본능 총재의 발표에 따르면 중·고교 투수들의 투구수가 제한되고 중등부 경기의 경우 그라운드 크기가 축소될 예정이다. 변화구 투구 금지 역시 검토된다.

-투수 기근이 아마야구만의 문제인가.

“프로도 문제는 있다. 선동열 감독은 오승환을, 김인식 감독은 류현진을,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할 대형투수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건 현장에서 한번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다. ‘아프지 않고 프로에 오는’ 한정된 자원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떻게 육성하는지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외국인 선발투수들이 팀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투수들이 자랄 기회를 잃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막전 선발도 10개 구단 모두 외국인 투수다.

“용병제도의 취지는 그들과 경쟁해서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었지만 비싸게 선수를 데려와서 의존하는 시스템이 됐다. 감독이나 구단들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단기 성과인 우승을 위해선 ‘몰빵’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대안이 마땅치는 않은데.

“프로스포츠는 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흐름으로 잘못 가다간 공멸한다. 토종 투수가 자라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면 2014년부터 3명으로 늘어난 외국인 보유 한도를 다시 2명으로 줄이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 물론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국제대회 경쟁력 저하가 투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임감독제에 대한 얘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제대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감독이 필요하다. 전력분석원만 외국으로 보낼 게 아니라 감독도 함께 가서 상대팀을 연구해야 한다.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고쿠보 히로키 감독은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에서 상대팀 선수들의 야구를 관찰했다. 우리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준비도 없이 이스라엘을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나? 천만의 말씀이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부동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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