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인터넷은 '불법약국'…여성흥분제·낙태약까지 거래

입력 2017-03-18 09:05 수정 2017-03-18 09:05

지면 지면정보

2017-03-18A26면

온라인 판매 적발 매년 증가세
의사처방 받지 못한 구매자 노려…부작용 땐 제대로 보상 못 받아

일부 품목 '해외 직구' 허용 악용…포장만 바꿔 '통갈이 수법' 반입
보건당국 전담인력 턱없이 부족…구매자 처벌조항 없어 단속 한계

Getty Images Bank

취업준비생 김모씨(26)는 수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김씨의 고민을 들은 지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면제 졸피뎀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졸피뎀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의사 처방이 있어야 구할 수 있다.

지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졸피뎀(수면제) 팝니다. 카톡 주세요”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면제 치사량’ ‘여성작업제’ 등 범죄를 암시하는 문구로 구매를 유도하는 글도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졸피뎀과 같이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하는 전문의약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불법 의약품을 전문으로 파는 사이트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적으로 마케팅하는 일당도 있고, 일부 개인은 처방받고 남은 약품을 팔기도 한다.

국내 금지된 약도 버젓이 거래

가장 흔하게 거래되는 의약품은 비아그라 시알리스 등 발기부전 치료제다. 구글에 ‘발기부전 치료제 판매’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판매 사이트가 뜬다. 여성흥분제 흥분크림 등 성(性) 관련 의약품도 기획상품으로 함께 판다. 한 판매 사이트에선 공정거래위원회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로고까지 게시해놨다. 게시판에는 “약을 잘 받았다” “배송이 빠르다”는 구매자들의 후기도 속속 올라온다. 경찰 관계자는 “병원에서 정식 처방을 받지 못하거나 처방 기록을 피하려는 이들이 주 고객”이라며 “여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수입·판매가 금지된 의약품도 암암리에 거래된다.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이 대표적이다. 미프진은 임신을 유지하는 호르몬을 억제하고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자궁에서 태아를 인공적으로 제거하는 약이다. 유럽 등지에서는 의사의 처방을 전제로 판매를 허용하고 있지만 낙태죄가 있는 한국에서는 수입 금지 품목으로 분류돼 있다.

각종 다이어트약도 자주 매매되는 품목이다. 해외 직구(직접구매) 사이트들에서 판매하는 ‘미국산 다이어트약’ 상당수에는 ‘시부트라민’ 성분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뇌졸중 등 심혈관계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국내 유통이 금지돼 있다.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지난해 10월 국내 반입이 금지된 미국산 다이어트약을 국내로 들여와 10억원어치가량을 판매한 일당을 검거하기도 했다.

일부 업체는 단속을 피해 SNS로 숨어든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OO약국’ ‘#OO약 판매’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을 올려놓은 뒤 1 대 1로 구매자와 접촉해 판매 사이트 링크를 보내준다.
금지 약품 ‘직구’로 몰래 들여와

의약품 상당수는 해외 직구로 조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행 관세법은 판매 목적이 없을 때에 한해 의약품 해외 직구를 허용하고 있다. 처방전이 없으면 6병 이하, 처방전이 있으면 최대 3개월치까지 해외 의약품을 들여올 수 있다. 약사법과 달리 의약품의 인터넷 거래를 허용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수입 금지 의약품도 직구로 국내에 유입된다. 불법 사이트들은 세관당국이 개인택배를 일일이 뜯어볼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다. 금지 의약품 포장을 일반 의약품으로 바꾸는 ‘통갈이’ 수법도 동원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서 약을 구한 뒤 영양제 통에 담아 보내기 때문에 세관에서 잘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불법 온라인 의약품 판매를 매년 1만건 이상 적발하고 있다. 불법 판매 게시물 적발 건수는 2013년 1만3542건에서 2014년 1만6394건, 2015년 1만7853건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식약처는 온라인 의약품 불법거래를 감시하는 사이버감시단을 운영 중이다. 모니터링을 통해 의약품 불법유통을 적발하면 경찰에 수사를 맡긴다. 사이트 접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식약처 관계자는 “온라인 수사 권한이 없는 데다 전담 인력도 7명에 불과해 의약품 불법거래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불법 구매자 처벌 조항 없어

불법 의약품 거래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구매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약사법에 따르면 의약품은 약사가 약국 안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구매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의약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수요가 끊이지 않다 보니 불법거래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의약품을 먹고 부작용이 생겨도 보상은커녕 하소연도 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직장인 장모씨(57)는 지난달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은 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구토 증세에 시달렸다. 판매업자에게 환불을 요구했더니 오히려 ‘구매 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선 “불법 낙태약을 먹었는데 하혈이 멈추지 않는다”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최중섭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부의 건강 상태, 임신 기간 등에 대한 정상적 진단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약물 중절을 시도하면 자궁 내막 손상, 과다 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전문의약품 복용으로 피해를 입으면 의사의 처방전을 증거자료로 제출해야 한다”며 “의약품을 불법 구매했을 때는 처방전이 없어 보상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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