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 시인 >

며칠 전 고향의 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다. 운동장에 서서 오랫동안 나는 옛날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어린 시절에도 꿈은 있었던가. 미욱한 어린 시절이 단순하게 끝나지 않고 나는 오래 서서 그 옛날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키가 작다고 학생회장을 시키지 않은 선생님이 떠오르고 그래서 교실 밖에서 훌쩍이던 일이 지나가고 운동회 때 저 멀리 2등을 두고 너무 빨리 1등으로 달리던 생각이 지나갔다. 그 광경에서 “우리 딸 잘한다”라고 소리치며 좋아하던 젊은 어머니도 스쳐 지나갔다. 남학생들이 내 이름을 가지고 “(신 달자)신을 어디에 달란 말이냐?”하며 놀리던 순간도 지나갔다. 그러나 가장 그 운동장에서 오래 날 놓지 않았던 기억은 친구들과 땅따먹기하던 모습이었다. 그 시절 다른 장난감이 없었으므로 주로 냇가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거나 땅 위에서는 줄넘기나 땅따먹기를 즐겨 했다. 나는 그 시절 가위바위보를 잘했다. 무슨 특별한 장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땅따먹기를 하면 내가 다 이기는 것이었다.

어느 날 친구 덕이와 우리집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하다 더 따먹을 땅이 없어 우리 학교 운동장인 이곳에 와서 해가 기울도록 땅따먹기를 했던 것이다. 결국 배가 고파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일어났지만 학교 운동장은 모두 나의 땅이었다. 완벽한 땅부자였다. 한 뼘씩 한 뼘씩 따먹기 시작한 우리집 마당과 학교 운동장이 모두 나의 땅이 돼 있었던 것이다. 성취감도 있었고 뿌듯함도 있었지만 땅을 따지 못한 친구의 우울을 생각하진 않았다. 세상의 땅이 모두 나의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고 땅을 가지려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면서 나는 내가 가진 땅이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이 서울에서 기둥 하나라도 내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결혼을 하고 나는 땅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서서히 알기 시작했다. 땅은 현실이었던 것이다. 상징도 꿈도 야망도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땅의 주인이 있어 내가 좋다는 땅에 내가 좋아하는 희망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옛날의 나도 땅부자 아닌가. 그러나 현실에선 ‘나의 땅’이 없는 결혼 초의 나의 생활은 혼돈으로 와서 현실로 깨우치게 한 것이다.

남편의 형님집에서 신혼방을 얻었던 그날부터 나는 한 평의 땅을, 단 한 평의 나의 땅을 꿈꿨던 것이다. 쪼그리고 살아도 나의 땅 나의 집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며 성취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내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는 땅부자의 뿌듯함이 기죽어 있었던 세월이 참 많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칠순이 넘어 대한민국 서울에 그것도 종로구에 스무 평의 땅을 가지고 거기 열 평의 집을 올리면서 생각했다. 열 평이면 내 온 몸을 좍 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살아있는 내 몸의 기능에 마음이라는 것을 내 집의 천 배 만 배로 늘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나에겐 저 높은 하늘을 무상으로 보고, 거리며 공원이며 꽃을 무상으로 보고, 나는 새나 변화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무상으로 받은 선물이 너무 많다. 옛날 내가 내 땅이라고 한 그 땅들도 지금 내 마음에 살아 있다. 아무리 땅이 보금자리와 연결돼 있지만 요즘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의 탐욕이 손가락질 당하는 곤욕스러움을 보면서 이런 만족감이 과연 옳은 일인가 나는 나에게 다시 묻고 있다.

신달자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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