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매화 필 무렵

입력 2017-02-10 17:36 수정 2017-02-11 00:37

지면 지면정보

2017-02-11A31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땅이 꽝꽝 언 다음에야 비로소 망울을 피워올리는 꽃.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서서히 몸을 여는 설중매화(雪中梅花). 고아한 자태만큼 향기도 고운 게 매화다. 송나라 시인 왕안석이 ‘담 모퉁이 매화 몇 가지/ 추위 이기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도 눈이 아닌 줄 알겠나니/ 은은한 향기 온몸에 풍기누나’라고 했듯이 예부터 눈 속의 매화를 지고의 아름다움으로 쳤다.

남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전남 순천 낙안의 금둔사 홍매화다. 금둔사 홍매화는 동지섣달부터 한겨울 내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날이 추워지면 오그라들고 햇살이 좋으면 피기를 거듭한다. 이번 겨울엔 개화가 조금 빨라 지난 연말부터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포근하던 1월 말부터는 꽃잎을 활짝 열어젖힌 매화송이가 부쩍 늘어 장관을 이뤘다.

섬진강 주변에도 봄의 전령이 닿았다. 전남 광양 외압마을과 경남 하동 일대에 홍매화가 한창이다. 제주에선 폭설 사이로 매화 꽃놀이가 펼쳐졌다. 지난 4일 시작한 서귀포 대정의 노리매(놀이+매화)축제는 내달 5일까지 계속된다. 한림공원과 휴애리 자연생활공원도 매화 향기로 가득하다. 백매화와 홍매화, 청매화에 이어 능수매화까지 자태를 뽐낸다. 그 곁에는 제주의 바람과 햇볕을 머금은 수선화가 지천이다. 추사 김정희가 유난히 사랑했다는 금잔옥대(金盞玉臺)는 술잔 모양의 노란 꽃잎. 부스러기 수선화로 불리는 제주 토종 수선화도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매화 따라 나선 상춘객들은 동백꽃에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추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동백이 등장한다. ‘당신이 봄밤 내내 바느질했을 시원한 여름옷은 겨울에야 도착을 했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걸치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머리맡에 둘러놓았소. (…) 동백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 내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소.’

동백은 남해안 섬들도 빨갛게 뒤덮었다. ‘한려수도의 푸른 보석’으로 불리는 통영 장사도에선 10만 그루 동백이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거제 지심도의 동백원시림과 여수 오동도 동백숲도 꽃단장을 하고 나섰다. 강진 백련사의 1500그루 동백숲 또한 붉은 꽃터널을 만들고 있다. 다음달 말이면 고창 선운사의 2000그루 춘백(春栢)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봄은 온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복수초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올리는 게 봄꽃이다. 이번 주말 남녘 들판, 바다 한가운데로 봄꽃 향기를 만나러 떠나보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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