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대선 잠룡들의 중위투표자 전략

입력 2017-02-08 18:08 수정 2017-02-09 06:44

지면 지면정보

2017-02-09A33면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장충동 족발, 신당동 떡볶이, 낙원동 악기상가…. 비슷한 가게가 줄지어 모여있는 곳들이다. 경쟁자를 멀리해야 이익일 텐데 되레 다닥다닥 붙어 이전투구를 벌인다. 하지만 가까이 모일수록 불특정 다수를 끌어모아 전체 파이가 커진다. 동떨어져 장사할 때보다 이익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집객효과를 노린 것이겠지만 ‘호텔링 모형’에 따른 공간적 밀집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해럴드 호텔링이 제시한 이 모형은 긴 해수욕장의 양쪽 끝에서 핫도그를 파는 두 이동매점이 더 많은 손님을 확보하기 위해 점차 한복판으로 이동해 결국엔 서로 바짝 붙어 장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호가 단일하고 경쟁이 제한적인 시장에선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역설이 생긴다.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호텔링 모형을 정치 투표에 적용했다. 정치시장도 해변 매점처럼 이익(득표) 극대화를 위한 제한적 경쟁시장이다. 정치인은 판매자, 유권자는 소비자, 공약은 상품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좌우로 치우친 공약보다는 중도에 가까운 공약이 투표에서 우위를 갖게 된다. 이른바 ‘다운스의 역설’ 또는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다. 선거 때 각 당의 공약이 큰 틀에서 비슷해지는 이유다.
올해 언제가 될지 모를 대선을 앞두고 잠룡들의 행보가 중위투표자 정리를 떠올리게 한다. 왼쪽으로 기운 운동장에선 중간도 오른쪽이 된다. 유승민 남경필 등 소위 보수 잠룡들도 공약이 좌클릭하는 이유다. 그럴수록 출마 여부도 불투명한 황교안의 지지도가 야금야금 올라가니 아이러니다.

모두 왼쪽으로 몰려가는 상황에서 혼자 오른쪽으로 한발 이동한 듯한 안희정의 행보는 영리한 전략이다. 더구나 그는 경합주인 충청 출신이고, 표를 나눠 가질 반기문도 물러났으니 그럴 만하다. 반면 촛불국면에서 강세를 보였던 이재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왼쪽 맨 끝에서 손님을 더 끌어모으기 힘들다.

현재 지지도가 가장 높은 문재인은 부자 몸조심의 딜레마다. 더이상 왼쪽 행보는 확장성을 포기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오른쪽 행보는 자칫 골수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안철수는 대선을 다자 구도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그래야 제3당의 입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시장은 이념, 지역, 세대, 계층 간 갈등이 중첩돼 있다. 쉽게 판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 선거 막판에는 공약 베끼기도 횡행한다. 그렇기에 중위투표자 정리가 작동할수록 포퓰리즘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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