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도시바와 SK하이닉스

입력 2017-02-07 17:53 수정 2017-02-07 23:28

지면 지면정보

2017-02-08A35면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헬조선을 외치는 요즘 청년들에겐 딴나라 얘기겠지만 1970년대 흑백TV는 가정집 재산목록 1호였다. 당시의 대기업 대한전선이 만든 ‘대한도시바TV’는 안방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배가 나온 브라운관과 목가구 장식의 케이스, 투박한 다리 등 지금 보면 신기할 정도지만 그때는 ‘문화가정’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원을 넣고도 진공관이 달아오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흐릿한 화면이 나왔지만 이웃에서도 이 신문명을 보러 오곤 했다. 그때 대한전선의 기술 도입처가 도시바였다.

도시바의 성장사에는 일본 전기·전자산업 발달사가 응축돼 있다. 1875년부터 도교 긴자에서 기계장치를 만들던 다나카제작소가 시작이다. 일본 최초로 백열등을 생산한 하구네쓰사, 도쿄(東京)전기와 합병 등을 거친 뒤 도쿄의 ‘도’, 시바우라(芝浦)전기의 ‘시바’를 딴 도시바가 됐다.
도시바의 명성은 이 회사의 ‘일본 최초’ 기록만 봐도 알 만하다. 레이더(1942) 디지털 컴퓨터(1954) 트랜지스터TV와 전자레인지(1959) 컬러 비디오폰(1971) 워드프로세서(1978) MRI(1982) 노트북(1986) DVD(1995) 고화질DVD(2005)…. 원전 등 산업기계, 영상의학, 철도차량, 반도체로 전기 위주의 사업도 계속 확대돼 왔다. 하지만 일본의 전자산업이 기울어지고 인수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적자에 빠지면서 근래 만만찮은 시련을 겪어 왔다. 2015년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은 최악의 스캔들이었다. SOC 부문, 컴퓨터, 반도체·TV 부문에서 실적을 부풀린 게 들통나 결국 이 해에만 5500억엔 적자, 1만명 해고로 이어졌다.

이렇게 매물로 나온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지분을 SK하이닉스가 사들이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3월 도시바메디컬시스템즈를 캐논에, 백색가전 부문은 중국 메이더에 넘기기로 한 뒤에 낸드반도체 부문까지 내놓은 터였다.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인 도시바의 낸드 생산라인 인수가로 SK하이닉스는 3조원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반도체 기업들에다 사모펀드까지 가세한 인수전의 열기가 만만찮은 모양이다. 가뜩이나 삼성전자가 약진하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견제심리도 걸림돌이라고 한다. 2015년 샤프가 삼성전자 대신 대만 훙하이로 넘어갔던 때가 기억난다. 그해 SK하이닉스도 도시바의 이미지센서 공장 인수전에서 소니에게 물먹었다. 한·일 서로가 과거사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는 게 냉정한 기업비즈니스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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