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재벌에 관한 여러 천동설

입력 2017-02-07 17:59 수정 2017-02-07 23:53

지면 지면정보

2017-02-08A34면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재벌개혁론은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사사건건 반목하던 대권주자들도 이구동성이다. 저성장도, 양극화도, 청년실업도 모두 재벌 탓이라고. 재벌개혁만이 경제를 살릴 궁극적 처방이 된 지 오래다. ‘재벌이 없어야 좋은 세상이 온다’며 해체 후 사회화 공약까지 등장했다. 혁명전야처럼 으스스하다.

쏟아지는 재벌개혁 담론의 대부분은 천동설처럼 시효가 지난 낡은 지식이다. 재벌이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 형태라는 전제부터 오류다. 한때 전문경영인 체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만의 예외적 모델임이 금세기 들어 밝혀졌다. 천동설 붕괴와 같은 반전이다. 피라미드형 오너경영집단이 가장 보편적 형태라는 견해가 지금은 정설이다. 한국 재벌론은 한국 외에는 지분정보를 얻기 힘든 데 따른 오해에 불과하다. 순환출자도 한국 재벌만의 후진적 꼼수가 아니다. 도요타 도이치뱅크 LVMH 등 글로벌 기업의 상용수법이다. 순환출자가 금지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오너경영·순환출자가 세계 표준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경제의 쏠림이 심화된다는 호들갑도 천동설 부류다. 30대 그룹의 매출 비중은 2000년 44%에서 2010년 36%로, 10대 그룹은 37%에서 27%로 줄었다. 구미에서도 한때 ‘대기업이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집중을 심화시킨다’는 ‘기업패권가설’이 유행했다. 그러나 입증에 실패했다. ‘대기업을 민주적 통제하에 둬야 한다’는 주장도 동반 퇴장했다. ‘한국이 대기업 천국’이라는 생각도 선입견이다. 1만명당 대기업(500인 이상 제조업) 수가 0.07개로 주요국 중 최저다. 독일은 0.21개로 우리의 세 배다. 일본(0.14개) 미국(0.13개) 영국(0.11개)도 한국보다 많다.

재벌개혁론의 핵심 논거는 ‘낙수 효과’의 실종이다. 대기업만의 성장은 분배를 왜곡하는, 안 하느니만 못한 ‘나쁜 성장’이란 주장이다. 선동일 뿐이다. 대기업과 거래가 많을수록 실적 개선 폭이 커진다는 낙수 효과 입증은 차고 넘친다. 재벌의 성공이 ‘단가 후려치기’ 같은 착취의 결과라는 비판도 과도하다. 조선 협력사의 영업이익률(2001~2010년)을 봐도 연 7.3%로 조선 대기업(7.0%)보다 높다. 후려치기가 있다 한들 갑을관계에서 용인되는 정도임을 시사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고 비난한다면 코미디다.

'마녀 사냥'식 재벌망국론
‘재벌=악’이란 천동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확산된다. 까마득한 해방정국도 사정권이다. 일본이 남긴 ‘적산’의 특혜 불하가 재벌 탄생 무대였다며 해체론을 설파한다. 70년 전 정경유착의 개연성만으로 정통성이 부정된다는 것인지. 30대 그룹은 대부분 적산과 무관하다. SK 한화 두산 정도가 적산으로 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2% 미만의 적산 기업 존속률을 극복한 승리자다. 사업보국의 긴 여정을 달린 결과다.

범람하는 재벌개혁론은 실상 ‘재벌망국론’이다. 모든 문제에서 재벌은 마녀로 치환된다. 양극화도 개발연대 ‘불균형 성장전략’ 수혜가 대기업에 집중된 결과라고 규정된다. 그 시절의 빈부 격차가 가장 작았다는 사실은 무시되고 만다. 물론 재벌에는 개혁할 점이 많다. 글로벌 위상에 맞는 책임도 껴안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재벌 스스로의 몫이어야 한다. 구시대적 편견으로 무언가를 강제하겠다는 생각은 지적 자만이다. 재벌은 ‘성공한 중소기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큰 성공’이 단죄 대상일 수는 없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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