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아이]

그들은 어떻게 태극기를 들게 되었나

입력 2017-02-06 15:04 수정 2017-02-07 08:43
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덕수(오른쪽)와 영자(김윤진 분)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영화 속 장면. / 출처='국제시장' 공식 홈페이지

[ 김봉구 기자 ] “어휴, 꼰대들…” “입금됐나봐?” 온라인 댓글창에서,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촛불에 대한 맞불 격인 태극기 군중은 조롱받는다. ‘적대’는 편리한 선택이다. 상대방을 다르고 이상하며 불가해한, 하여 경멸해도 되는 이들로 격하시킨다.

이러한 조롱과 경멸이 부당하다고만 하긴 어렵다. 반대 방향으로도 “종북 좌파” “빨갱이” 따위의 낙인을 찍은 전력이 있어서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다. 적대로 인한 ‘혐오’가 문제의 핵심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고, 지금의 소수파인 이들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그들은 어떻게 태극기를 들게 되었을까? 꼰대여서? 아니면 입금돼서?

A. 어르신이 많다.
B. 극우 기독교인이다.
C. 특정 지역에 편중.
D. 돈에 매수된 사람들이다.
E. 친박 단체(박사모,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소속원들이다.
F. 문화자본의 부족.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간추린 태극기 군중의 ‘고정관념에 기초한 프로필’이다.(2017년 1월18일, 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 공동주최 시국대토론회 발표문 〈맞불 시민과 인지부조화〉) A~C는 이른바 ‘꼰대’를 이루는 성분, D는 ‘입금’을 각각 뜻한다. 일각에선 D와 E의 커넥션을 강조하는 경향성도 보인다.

D의 경우 집회 참여가 순수 자유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질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 D와 연관된 E도 마찬가지다. 이를 E’로 걸러내면 A~C와 물질적 보상이 없는 E가 남는다. 이들 각 범주의 상호교집합은 크다. 공통의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노년의 덕수(황정민 분)를 앞세운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 출처='국제시장' 공식 홈페이지

노년층(A) 기독교(B) 영남(C)으로 특정되는 태극기 군중은 친박(E)의 공통분모로 묶인다. 친박이란 용어를 톺아봐야 한다. 친박근혜에 국한되지 않는다. ‘친박정희’ 지분이 여전히 크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독재)도 있지만 공(경제발전)이 더 크지요.”(60대·기독교·영남 거주 남성)

문화자본 부족(F)의 특성 역시 세분화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문화를 인지, 감정, 도덕의 세 측면으로 나눴다. 전상진 교수는 이 개념을 활용해 태극기 민심을 ‘인지부조화에 대한 감정과 도덕 영역의 우위’로 설명한다.

‘빈곤에 허덕이며, 자살 충동을 참고 있으며, 빠른 사회변화를 이해할 수 없는 데다, 젊은 것들에게 천대 받는다고 느끼는 어르신들’은 현 상황을 인지적으로 동의하더라도(“박근혜가 잘못하긴 했지”) 감정적으로나(“그래도 지금 촛불은 너무한 거야”) 도덕적으로는(“이렇게 나라가 흔들리면 안 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거대한 전사(前史)가 있다. 어릴 적 전쟁을 겪었거나 그 여파로 배를 곪으며 자랐다. 참화가 언제 재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빨갱이’ 공포와 적대의 원천이 됐다. 중장년기를 거치면서 ‘산업화 역군’으로 ‘조국 근대화’를 내 손으로 일궜다는 자긍심이 뿌리내렸다. ‘친박’은 이 시기에 대한 상징적 내면화의 결과물이었다.

2014년 말 개봉한 천만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 분)는 그 표상이다. 흥남 철수, 파독 광부, 월남 파병, 이산가족 상봉 등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악착같이 온몸으로 통과한 노년의 그는 독백한다. “아부지,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덕수의 생에서 ‘나’는 설 곳이 없었고 ‘국가’와 ‘가족’만 있었다. 평생에 걸친 희생과 헌신에 대한 자부심이 훈장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게 나라냐”라고 촛불이 따질 때 “그래도 우리나라”라고 태극기가 외치는 이유다.



성향과 견해 차이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건 세계관의 충돌이다.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면 희망이 보이던 세대’와 ‘풍요롭지만 희망을 찾기 힘든 세대’의 부딪침인 셈.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UN 사무총장이 되기까지, 자수성가의 삶을 산 태극기 군중 동년배 1944년생 반기문의 정치적 실패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장편소설)의 세계관을 이해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성별을 넘어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관건은 상호이해다. 태극기 군중이 처음부터 ‘꼰대’가 아니었듯, 촛불 시민 역시 한때 그들이 거쳐온 ‘젊은 것들’일 뿐이다. 30여년 전 태극기 군중의 장년 가장 시절을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은 유년기의 촛불 시민인 딸 덕선(혜리 분)에게 털어놓았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애. 처음부터 아빠였던 건 아니잖애.”

사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서로의 이야기다. 그래서 촛불과 태극기가 상대에게 눈 흘길 이유는 별로 없다. 서로를 향해 던지는 날선 눈빛은, 정작 그들을 갈림길에 서게 한 사건에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영상 출처=tvN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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