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논쟁

입력 2017-02-05 17:21 수정 2017-02-05 23:48

지면 지면정보

2017-02-06A35면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언론 사이엔 ‘허니문’ 기간이 없는 모양이다. 출범 직후부터 충돌이, 아니 정확히는 주류 언론들의 트럼프 딴죽 걸기가 계속되고 있다.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논쟁이 대표적 예다.

발단은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보도였다. 대부분 미국 언론이 당일 모인 인파가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식 때와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 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다음날 아침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보도가 “고약하고, 잘못됐다”며 포문을 열었다. 대변인으로서 첫 공식 브리핑이었다. 그는 “취임식에서 볼 수 있는 인파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였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는 모든 공간이 꽉 차 있었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언론들이 발끈했다. 오바마 취임식 당시 찍은 항공사진과 비교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 첫날부터 거짓말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 측근인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나섰다. 그는 지난달 22일 NBC 뉴스에 출연해 “스파이서는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이지 거짓말한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발언이 오히려 도화선이 됐다.
CNN은 ‘거짓말’의 다른 표현일 뿐인 ‘대안적 사실’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행태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진리부(Ministry of Truth)’를 연상시킨다고 논평했다. 이 보도 이후 이 책을 사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1984》가 아마존 소설 베스트셀러 5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주말판에 트럼프 측근들의 배경을 잘못된 정보로 채워넣고 ‘대안적 사실로 본 트럼프 행정부’라는 만평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의 ‘무지’가 드러나고 있다. ‘대안적 사실’이라는 것이 트럼프 측이 갑자기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라 일반적인 법률용어라는 것이다. 재판에서 양측이 서로 주장하는 사실이 다를 경우, 즉 ‘경합하는 사실’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각기 다른 변론에 필요한 증거가 많을 경우 두 종류 이상의 사실 주장을 할 때도 쓰이는 용어다.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한 콘웨이에게는 ‘대안적 사실’이 일반 용어였다.

그는 “보는 각도와 인용하는 데이터에 따라 충분히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며 ‘대안적 사실’이란 개념을 쓴 것이다. 이를 두고 새로운 신조어이자 ‘거짓말의 트럼프식 표현’이라고 호들갑을 떤 언론이 머쓱해졌다. 그러나 승복했다거나 사과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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