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사랑받은 1박2일…대본 없는 '야생 예능'의 힘!

입력 2017-02-03 18:05 수정 2017-02-04 01:40

지면 지면정보

2017-02-04A23면

미디어&콘텐츠

복불복 게임으로 의외성 연출
여행 개념, 관광→체험으로 바꿔

지난달 29일 방영된 KBS ‘1박2일’(사진)은 어르신을 찾아가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아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복불복 방송을 내보냈다. 한참 오프닝을 하는 중에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 KBS ‘한국인의 밥상’ 내레이션 녹화를 하러 들어가던 최불암을 본 출연진이 그에게 우르르 달려가 새해 인사를 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최불암을 즉석에서 섭외해 세배하고 덕담을 받는 풍경을 만들었다. 특유의 “파-”하는 웃음과 함께 애정 가득한 덕담을 건네는 최불암이 출연하게 된 이 짧은 ‘우연’은 그간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이 무려 10년을 거듭해오면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를 보여줬다. 꽉 짜인 대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여행이 그러하듯이 길 도처에 널린 우연적 사건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10년 전 1박2일 팀이 충북 영동으로 떠난 첫 번째 여행은 그 우연적 사건을 통해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를 열었다. 대본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가 못내 불안하던 제작진은 예능인데 재미 요소가 빠지면 안 된다며 가는 길 내내 ‘복불복 게임’을 했다. 의외의 재미가 쏟아졌고, 생각보다 훨씬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세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어둑어둑해진 터라 출연자들은 어느 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밤늦게까지 복불복 게임을 이어갔다. 어쩔 수 없이 출연자들끼리 게임을 하며 놀았던 것인데, 시청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여행 하면 ‘관광’을 떠올리던 기존의 관념을 자연스럽게 깨버렸다. 관광지를 찾아가 보고 사진 찍는 여행에서 함께 간 이들이 야외에서 놀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여행으로의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아웃도어’ 트렌드는 그렇게 시작됐다.

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길에서 만나는 우연적 요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 열린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걸 1박2일은 보여줬다. 섬으로 들어갈 예정이던 1박2일 팀이 갑작스러운 비바람에 배가 뜨지 못하자 인근 바닷가 작은 민박집에 들어가 복불복 게임을 벌이는 상황은 오히려 더 큰 재미를 안겨줬다.

여행이 가진 이런 우연적 요소들은 당시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 리얼리티 경향에 딱 맞는 소재였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연예인은 더 이상 신비주의를 고수할 수 없게 됐고, 나와는 다른 ‘동경의 대상’에서 나와도 같은 구석이 있는 ‘공감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1박2일이라는 야생 버라이어티였다. 연예인들은 그때까지 해본 적이 없던 1박2일간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아침에는 여지없이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민낯을 내보여야 했으니 말이다.

초기 1박2일을 맡은 나영석 PD는 이를 통해 우리네 여행사에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 됐다. 관광의 개념을 깨고 진정한 의미의 체험 여행 시대를 열었으며, 지금도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배낭여행, 정착형 힐링여행 같은 다채로운 여행을 문화 트렌드로 만들어가고 있다. 유호진 PD가 그려 보이려 했던 “모든 일상이 여행”이라는 시각은 여행의 변화가 일상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정해진 틀에 얽매여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는 게 아니라 모든 일상의 우연적인 사건들에 마음을 열어놓는 삶.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여행처럼 사는 일상이야말로 더 풍부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1박2일이 10년간 그 복불복으로 이뤄진 우연한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속삭인 말은 바로 그것이다. ‘여행처럼 살아라. 일상이 여행일 테니….’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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