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 시인 >

며칠째 춥다. 따뜻한 방에 있어도 손끝이 시린 것 같은 맹추위다. 상추잎만 한 어둑한 마당에 신문을 거두어 오는 찰나도 두꺼운 머플러를 목에 두른다.

겨울의 맛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겨울을 맞고 있다. 새해 들면서 늘 하던 버릇대로 자기와의 약속을 한다. 이번 새해 약속은 겨울의 힘을 나의 힘으로 새롭게 재창조하는 일이다. 몇 번째 하던 약속이다. 나이에 비해 좀 과한 줄 안다. 몸은 힘을 잃어도 정신만은 겨울의 힘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보자는 약속인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몸의 힘이 정신의 힘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매년 하나씩 숫자가 오르는 나이를 달래며 정신의 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0권이 넘는 시집에 겨울시가 많은 것도 나는 겨울이란 계절이 갖는 힘을 인간의 힘으로 이동하며 겨울나무처럼 씩씩하게 서서 칼바람과 눈을 맞는 의연한 자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을 것이다. 몸은 굼벵이 같고 의지만 청청해서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가지가 꺾이는 바람 속에도 기어이 봄을 만나고 잎을 피우는 나무를 보면 왜 인간의 마을에 나무가 함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겨울은 호령 한마디 없이 우리를 절절매게 한다. 완벽하게 무릎을 꿇게 한다. 그래서 겨울처럼 그렇게 단호하게, 수다스럽지 않고 정신 하나로 꿋꿋하게 서 있는 힘을 배웠으면 한다. 내가 아는 나의 성격은 아주 무른 편이다. 달리 말하면 지극히 연약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유부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게 진취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아는 나는 적당히 핑계를 대고 그 어떤 이유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미욱하고 비겁하다. 무슨 작은 일이라도 시작할 때는 당장 하는 법이 없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나갈 곳이 없을 때 겨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말을 먼저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한다. 이미 말해 놓은 약속이기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다. 그래서 시작한다. 자기개혁의 한 방편이다.

겨울은 단호하다. 지그시 이를 악물고 견디는 힘이 얼굴 없는 성자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다. 몸을 베는 일을 겁내지 않는다. 스스로 단호하며 스스로 숨을 죽인다. 쩡 칼바람이 귀를 베어가도 그대로 있다. 그런 겨울의 내적 강인성이 결코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그런 성질이 물렁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당연 스승이다. 모든 문학 속에는 겨울의 상징이 넘친다. 아마도 그런 예리한 정신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말한다. “너의 한계성에 도전하라. 그러면 그 어려움이 너의 능력 안에 들어와 안길 것이다.” 어디서 본 듯한 이 말을 나는 믿는다. 그것은 바로 겨울의 힘이다. 겨울은 몇억만 개의 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찌 겨울이겠는가. 자연의 섭리 말고는 누구도 풀지 못할 겨울의 근육은 사실 인간의 무의식에 그 씨앗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존재를 믿는다. 인간은 창조의 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겨울은 힘이다. “대지가 꽃을 피우는 일은 겨울이 고통을 견디는 힘을 온 천하에 알리는 일”이라고 타고르도 말했다. 겨울이다. 불안하고 잔뜩 화도 나는 겨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곧 봄이 와 천지 가득 꽃을 피울 거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힘을 믿는다. 우리는 희망을 배운 사람들이다.

신달자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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