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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문 아트센터화이트블럭 대표 "화이트블럭 천안 예술촌, 젊은 작가들이 맘껏 끼 발산하는 공간될 것"

입력 2017-01-12 16:10 수정 2017-01-12 16:10

지면 지면정보

2017-01-13B6면

만난 사람 =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파주서 운영하는 미술관 레지던시
입주 경쟁 갈수록 치열한 것 보고
충남 천안에 9만여㎡ 부지 마련
젊은 예술가 위한 공간 3월 착공
2025년까지 예술마을로 키울 것

16년간 월급쟁이 생활 거친 후
레인지 후드업체 '하츠' 창업
아마추어 연극·음악인 활동
뮤지컬 '명성황후' 산파 맡기도

이수문 아트센터화이트블럭 대표는 천안 예술촌 평면도를 가리키며 “이곳이 융·복합 예술공간으로 발전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낙훈 기자

이수문 아트센터화이트블럭 대표(68)의 별명은 ‘미스터리’다. ‘Mr. Lee’라는 의미도 있지만 ‘일탈’을 자주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학창 시절(경기중·경기고·서울대 건축공학과) 도서관 대신 주로 밴드부와 연극반에서 살았다. 영장이 나오기도 전에 자원 입대해 군악대에서 생활했다. 폼이 난다고 생각해서다. 지금도 클라리넷을 부는 그는 이 분야 연주 경력이 50년에 이른다. 이런 인연으로 경기고 밴드부 출신 모임인 ‘경기시니어앙상블’ 회장과 경기고 연극반 출신 모임인 ‘화동연우회’에서 주요 작품의 총제작을 담당했다. 한샘과 현대종합목재에서의 직장생활을 거쳐 레인지 후드업체 하츠를 창업한 뒤에는 “왜 한국에서 외국 뮤지컬만 공연하느냐”며 창작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작가와 연출가를 규합해 런던과 뉴욕 등에서 뮤지컬을 눈여겨봤다. 뮤지컬의 제왕 캐머런 매킨토시와 일본 연극계 대부 아사리 게이타 씨를 만나 조언을 들었고 그 뒤 국민 뮤지컬로 불리는 명성황후의 산파역을 맡았다. 하츠 매각 후 파주 헤이리에 신진작가 등용문인 아트센터화이트블럭을 연 데 이어 이번에는 천안에 작가들을 위한 무료 숙소 및 작업장인 레지던시 건립에 나섰다. 이름은 ‘화이트블럭 천안 예술촌’이다. 그를 선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오는 3월 천안 예술촌을 착공하신다면서요.

파주 헤이리 ‘아트센터화이트블럭’

“이제 제가 한국 나이로 칠순입니다. 앞으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 정도라고 봅니다. 이 기간 사회에 뭔가 조그마한 기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화이트블럭 천안 예술촌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창작공간과 전시실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육성하기 위한 마당입니다. 능력과 열정은 있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예술인들을 위한 레지던시지요. 개인당 60㎡ 정도의 쾌적한 공간을 마련해 작업할 수 있도록 해줄 생각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건립 계획은.

“천안에 9만여㎡의 임야와 대지를 마련했습니다. 3단계로 진행할 예정인데 우선 1단계로 작가 16인을 위한 숙소와 작업실, 전시실을 착공할 계획입니다. 작년 11월 건축 허가를 받았고 올 3월께 착공해 내년 4월 완공할 예정입니다. 천안과 공주 중간쯤인 천안시 광덕면에 있습니다. 임야를 넓게 잡은 것은 나중에 작가들이 산책하면서 좋은 작품을 구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설계자인 원우건축은 미술작가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18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습니다. 원우건축의 대표 이종철 건축사는 서울 도봉구청 등을 설계한 분입니다. 2단계는 전시실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과 작가 8명(예정)을 위한 숙소 및 작업실이지요. 2022년 4월께 준공할 예정입니다. 3단계는 2025년 이후 임야에 예술가들이 자립하고 생활하는 커뮤니티를 조성해 국내의 대표적인 예술마을로 키울 생각입니다. 그러면 10년쯤 뒤에는 자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이런 일을 추진하게 됐나요.

“헤이리에 있는 아트센터화이트블럭에서 소규모 레지던시(4명 입주)를 운영하고 있는데 입주 경쟁률이 50 대 1이 넘습니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이왕 할 거면 좀 더 크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국내 미술대학 졸업자는 연간 약 2만5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 순수미술이 절반 정도 되는데 10년 정도 지나면 5%만이 전업작가로 활동할 정도로 줄어든답니다.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죠. 젊은 작가들이 대학 졸업 후 5~10년쯤 지나면 전공을 포기하는 길에 접어드는 셈이지요. 이때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도록 35~45세 정도의 작가를 입주시키려고 합니다. 공모를 통해 선발해 2년간 작업공간을 무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전기료만 받고요. 작가와 평론가들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켜 미술과 음악 공연예술 등이 접목되는 융복합 예술공간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그는 특이한 인생을 산다. 헤이리 중심 연못 앞에 화이트블럭을 지었을 때도 헤이리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노출 콘크리트 일색인 이 지역 건축물 중 유일하게 외벽이 통짜 유리와 흰색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밖의 연못과 숲은 그대로 안으로 투영된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젊은 건축가 박진희 씨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헤이리에서는 이 건물을 기존 건축물에 대한 ‘반란’으로 규정했다. 노출 콘크리트라는 엄격한 기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건물만 특이한 게 아니다. 이곳은 미술품 전시와 더불어 음악 퍼포먼스 공연 등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3층 규모의 아트센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종합예술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직장인·기업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끼를 발휘하셨는데.

“학창 시절부터 딴따라였습니다. 연극과 음악에 심취했지요. 공부는 며칠 전 벼락치기로 대충 마무리하고 연극반으로 달려갔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보루네오통상과 한샘, 현대종합목재에서 16년간 월급쟁이 생활을 한 뒤 레인지 후드 업체 하츠를 창업했습니다. 20년 동안 경영했습니다. 아마추어지만 음악과 연극에 관여하다 보니 한국 사람처럼 신명나는 공연에 타고난 재질을 가진 민족도 드문데 왜 창작 뮤지컬이 없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시 세계 공연예술계는 ‘캣츠’ ‘미스사이공’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의 뮤지컬이 휩쓸고 있었지요. 이왕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기로 마음먹고 지인에게 부탁해 캐머런 매킨토시와 아사리 게이타 씨를 만나 조언을 들었습니다. ” (매킨토시는 ‘레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등 세계 4대 뮤지컬 제작자다. 세계 뮤지컬계의 제왕으로 불린다. 극단시키 대표를 지낸 아사리씨는 일본 연극계의 독보적인 존재다. )

▷어떻게 창작뮤지컬을 제작하게 됐나요

“음악과 연극계에 지인이 많습니다. 마침 어떤 자리에서 조창걸 한샘 창업자를 만났는데 ‘뮤지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연극이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래서 ‘돈이 없어 못 만들지 왜 못 만듭니까’라고 응수한 게 뮤지컬 제작에 나선 계기가 됐습니다. 작가 연출가 음악인을 섭외했지요. 주머닛돈을 털고 조창걸 창업자의 도움을 받아 이문열 작가, 윤호진 연출가를 섭외한 뒤 약관의 박칼린 음악감독을 대동하고 1993년 한 달 동안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탄생한 게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지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지 100주년이 되는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가 무대에 올랐다. 당시 그의 직함은 예술의 전당 ‘기도’였다. 손님들을 좌석으로 안내하는 일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요즘도 음악과 연극활동을 하시나요.

“경기시니어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고 밴드부 출신이 주축이 된 앙상블로 멤버는 대학교수 기업인 법조인 등 70여명에 이릅니다. 요즘엔 공부 때문에 고등학교에 밴드부가 거의 없습니다. 후배들 행사에 나가서 연주하기도 하고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정기 공연도 합니다. 연극은 직접 출연하지 않고 후배들의 공연을 주로 관람합니다. 제가 속한 화동연우회는 경기고가 있던 지명 ‘화동’에서 따온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데 회원으로는 신구 한진희 정한용 최용민 씨 등 전문 배우와 김민기 극단학전 대표(‘아침이슬’ 작사·작곡자), 건축가 이관영 씨, 오영호 박을복자수관장 등 100명에 이릅니다. 연극계 원로인 고 이낙훈, 김동훈 씨도 초창기 회원이었지요.”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사람이 화가이기도 하고요. 학창 시절에 건축공학을 전공할 때 미술에 조금 관심을 가졌지만 화이트블럭을 계기로 또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됐고 미술인들의 열악한 환경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미술 자체가 아니라 미술인을 위한 하드웨어 조성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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