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투자하라"는 트럼프…법인세 대신 '현금흐름세' 검토

입력 2017-01-11 19:36 수정 2017-01-12 04:04

지면 지면정보

2017-01-12A8면

Wide & Deep 30년 만에 대규모 세제개편 예고

트럼프 인수위, 하원의장과 회동

기업이 해마다 쓰고 남은 현금에 대해서만 과세하면
해외에 이익 남겨둘 필요 없어…미국 내 투자 활성화 기대

WTO 규정에 위배…조정 거칠 듯
지난 9일 폴 라이언 미국 공화당 하원의장의 방에 라인스 프리버스(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스티븐 므누신(재무장관 내정자) 등 도널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내각을 이끌 주요 인사가 모였다. 이 자리엔 백악관 선임 고문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진 재러드 쿠슈너(트럼프의 맏사위)도 참석했다.

이들은 트럼프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토되는 개편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트럼프 당선자가 제안한 법인세율 대폭 인하(35%→15%)이고, 다른 하나는 라이언 의장 등 공화당 하원 인사들이 제안한 현금흐름 중심의 세제 전환이다.

두 방안은 차이가 있지만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유도한다는 큰 목적은 동일하다. 공화당이 행정부,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만큼 어떤 세제 개편안을 구상하든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세제개혁 이후 약 30년 만의 대수술이 될 전망이다.

◆美 하원 “현금흐름에 과세”

트럼프 당선자는 지금까지 대선 공약, 트위터 발언 등을 통해 미국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은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국경세(관세) 형태로 멕시코 등 타국에 투자하는 이들이 부담을 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법인세율 인하와 관세부과, 미국 내 인프라 확충에 투자하는 금액에 대한 세제혜택 등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소다. 미국에 투자하면 ‘당근’(세제혜택)을, 미국 외에 투자하면 ‘채찍’(고율관세 부과)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공화당에서는 다른 해법을 제안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6월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제안한 소비지 기반 현금흐름세(DBCFT: Destination-Based Cash Flow Tax)가 그것이다. 이들은 미국 기업의 현금흐름 유입에서 유출을 제외한 부분(순현금흐름)에 20%(법인)~25%(개인사업자) 세금을 매기고, 여기에 국경 조정(border-adjustment) 개념을 넣어 수입과 수출을 차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이익에 과세한다는 법인세의 기초부터 허무는 파격적인 구상이다. 선진국 최초로 법인세를 없애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외 과실송금 쉽게

이렇게 하겠다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미국은 기업이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에 고율로 과세(연방정부의 기본 법인세율 35%, 주정부 세금 포함 시 최고 38.9%)한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은 해외 이익을 본국에 들여오지 않고 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쌓아 놓고 있다.

하지만 순현금흐름에 과세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고정자산에 투자할 때 종전에는 5년이나 10년 등 감가상각 기간에 걸쳐 장기간 비용처리가 됐지만 현금흐름 기준으로는 첫해에 몽땅 비용(현금지출)으로 처리된다. 해외에 쌓여 있는 과실을 투자 형태로 가져오도록 유인할 수 있다. 또 타인자본(부채)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인센티브(이자비용 발생)가 사라져 기업이 불필요하게 부채를 지는 일이 없어진다.

수입업자 부담이 커지고 수출업자 부담이 줄어 수출 촉진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이 방안을 시행하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여 수출 촉진 효과가 곧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공화당은 이 과정에서 세계주의 과세 체제를 영토주의 과세 체제로 바꾸자는 주장도 하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우려

공화당 하원의원의 구상엔 단점도 있다. 윌리엄 게일 미국 세금정책센터(TPC) 공동사무국장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허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어 도입하려면 상당한 조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정 과정에서 당초 의도한 긍정적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세율 인하와 동시에 적용한다면 연방정부 세수가 향후 10년간 9000억달러나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재무장관)는 지난 8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이 방안이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정부 재정 기반을 갉아먹으며, 보호무역적 기조를 강화하고, 달러화 강세를 촉진해 세계경제를 뒤흔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가 현금흐름세를 실제로 도입할지, 아니면 단순히 법인세율 대폭 인하에 머물지는 분명하지 않다. 많은 혼란을 가져올 현금흐름세 도입은 쉽지 않다. 하원 역시 세율 인하(20%)를 주장하는 만큼 현금흐름세 도입 없이 세율을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미국 법인세제에는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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