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시대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공유경제에 이르기까지 과거 영화 속 상상력이 실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영화 한 편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대접받는 요즘, 영화로 금맥을 캐는 사람들을 만나 '시네마 재테크'의 성장과 한계를 엿본다 [편집자주]

"영화 '너의 이름은(your name)' 청약 모집률 130% 달성으로 펀딩에 성공했습니다. 배정결과는 2017년 1월5일에 '나의 펀딩 현황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크라우드펀딩 중개자(온라인소액투자중개자 및 통신판매중개자)인 (주)와디즈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지난달 수입 영화 최초로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했다. 그리고 청약 개시 1시간 만에 완판됐다.

이 영화의 당초 모집금액은 5000만원. 하지만 2억원 가량이 한꺼번에 몰렸고, 하루 만에 모집금액이 3배(1억5000만원)로 증액됐다.

영화 펀딩은 통상 제작 초기 단계에서 진행된다. 더욱이 일반투자자(관객)는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과 다르게 시나리오를 볼 수 없다. 스포일러(줄거리를 미리 알려주는 정보)에 대한 우려 탓이란 게 펀딩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문투자자가 아닌 이상 감독과 배우만 보고 쌈짓돈을 투자해야 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영화 펀딩에 대한 투자리스크 요인 중 하나다.

이와 반대로 펀딩을 진행한 경우가 '너의 이름은'이다. 작년 여름, 일본과 대만 중국 등 아시아 5개국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주요 줄거리는 물론 OST까지 전부 공개돼 있다.

'너의 이름은'의 국내 개봉일은 2017년 1월4일. 마케팅 단계에서 감행된 수입 영화의 첫 크라우드펀딩이다. 일본, 중국, 대만 등 사전 흥행 덕분인지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도시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의 사랑과 기적을 다룬 이 영화는 일본 개봉(2016년 8월26일) 후 4개월 만에 관객수 1500만명을 돌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타이타닉' '겨울왕국'에 이어 역대 흥행 4위(매출액 기준)에 이름을 올렸다.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 요건이 순식간에 '입소문'을 냈다. 별도의 수수료 없이 표면 금리 연 10%(6개월 환산 5%)를 주는 것이 기본 적용 금리다. 관객 수 50만명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5% 금리를 받아 챙긴다.

정산 시점의 최종 관객 수가 50만명에 도달하면 투자자들은 원금의 연 20%에 해당하는 이자를 받을 수 있고 80만~100만 도달 시 연 30%, 150만~200만명이면 원금의 연 50%가 이자로 들어온다. 최대 이율은 연 100%(500만명 이상)에 이른다.

소액 펀딩이라서 높은 이자 지급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투자 상품이 '원리금 상환 의무'를 가진 공모사채(회사채)라는 점도 청약에 불을 지폈다는 설명. 수입사가 적자를 보더라도 파산 전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제작 단계가 아닌 개봉 전 펀딩이라서 짧은 투자기간 역시 장점이다.

'너의 이름은'을 수입한 곳은 (주)미디어캐슬로, 콘텐츠 수입·배급사다. 와디즈를 펀딩 플랫폼으로 삼았다.

강상목 미디어캐슬 이사는 "이번 크라우드펀딩은 (모집금액을) 실제로 마케팅에 사용하려고 진행한 것이 아니라 '입소문'을 낼 수 있는 마케팅 수단으로 고안해 낸 장치"라고 말했다.

이어 "수입 영화의 최초 펀딩 도전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돼 고무적"이라면서 "좋은 영화에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된 관객(일반투자자)에게 흥행과 동시에 수익까지 기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캐슬은 이번 펀딩을 계기로 다양한 수입 영화에 대한 프로젝트 펀딩을 계속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펀딩 규모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소액 펀딩'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 대표는 "기본 이자가 5%라고 해도 당초 펀딩 목표액(5000만원) 대비 이자비용은 250만원에 불과하다"며 "증액 금액인 1억5000만원에 대입해도 부담해야 할 비용은 75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이 어렵지 않다면 펀딩 자체가 마케팅 전략으로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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