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국회도 믿을 수 없어…박 대통령 퇴진 때까지 촛불 든다"
"의혹만으로 탄핵…법치 파괴, 정치 이슈로 경제까지 발목"
지난 24일 성탄 전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촛불과 태극기를 손에 쥔 시민들로 가득 찼다. 광화문 사거리 경찰 통제선을 기준으로 한쪽은 ‘촛불’이 달아올랐고, 다른 한쪽은 태극기 물결이 일었다.

9차 촛불집회는 종전과 달리 광화문광장에 집중됐다. 서울광장 인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양측 모두 참가 인원이 예상을 웃돌았다. 촛불집회 주최 측은 광화문 광장에 70만명(경찰 추산 5만3000여명)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보수단체 주최 측은 이날 보수단체 집회에 약 160만명(경찰 추산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이나 대한문 앞에서 만난 시민 모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이들이 광장에 나온 이유는 달랐다.

공장 관리인 윤효경 씨(67·왼쪽부터)와 직장인 최유화(29), 최승범(30) 씨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9차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통령 퇴진’ 피켓을 들고 있다. 박상용 기자

“국회도 믿을 수 없다”

경기 용인에서 공장 관리인을 맡고 있는 윤효경 씨(67)는 2차 촛불집회 때부터 매주 광화문광장에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도 많고 추운데 그만 나가야지’ 하다가 뉴스를 보면 화가 나서 다시 나오게 된다”며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했다고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나오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과 손녀는 성탄절에 보기로 하고, 이브에 집회에 참석했다”며 “나이가 많으면 보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석기·한상균 석방 등 과도한 정치적 구호는 촛불집회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수원의 한 반도체 기업에 다니고 있는 최승범 씨(30)는 광화문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즐겼다. 그는 “일본에서 생활하는 여자 친구가 전날 입국해 크리스마스 새벽에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며 “데이트 시간이 하루밖에 없지만 집회에 힘을 보태고 싶어 참석했다”고 했다. 최씨는 “우병우를 불러놓고 아무 성과 없이 윽박만 지르는 청문회를 보면서 국회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정권 비리와 부패가 밝혀지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있을 때까지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대학생 박성은(21·왼쪽부터), 황단비(19) 씨와 문중현 씨(70)가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열린 맞불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박상용 기자

“의혹만으로는 탄핵 안 돼”

대한문 인근에서 만난 무역회사 중원E&I의 문중현 대표(70)는 지난달 중순부터 2주에 한 번은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촛불집회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보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오게 됐다”며 “탄핵은 헌재가 법과 원칙대로 판단하게 두면 될 일이지 촛불집회로 압박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한된 인맥에 의존해 대통령직을 수행한 것은 잘못이지만 탄핵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 대통령 탄핵안 가결 뒤 국정이 마비되면서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수출 부진에 일감을 찾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며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정치 이슈가 불필요하게 경제 발목을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성은 씨(21·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와 황단비 씨(19·중앙대 철학과) 같은 젊은 층도 눈에 띄었다. 보수의 가치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에서 만났다는 이들은 “앞으로 크리스마스이브는 수십 번도 더 있겠지만 집회는 오늘 하루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대통령이 위법을 저질렀다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증거로 나온 것이 없다”며 “의혹과 추정만 가득한 상황에서 대중이 법을 이용해 탄핵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 간다고 하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욕부터 한다”며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대학생이 많아 아쉽다”고 했다.

박상용/구은서/김형규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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