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도덕적 지능만큼도 안되는 윤리의식
경쟁·배금주의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탓
윤리가 일상생활 그 자체가 되도록 해야

윤은기 <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

“개는 사리분별력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를 사귀거나 원한을 품을 수 있다. 심지어는 사람처럼 당황하거나 웃기도 한다.” “개가 노는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다른 동물을 세게 물거나 공격하는 게 잘못된 일이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진화생물학자인 마크 베코프 미국 콜로라도대 명예교수가 수년 전 뉴질랜드에서 열린 동물학대 방지협회 세미나에서 발표해 화제가 된 내용이다. 개도 ‘도덕지능’을 갖고 있어서 옳거나 그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베코프 교수는 오랫동안 개와 코요테 등을 연구해 왔는데 이런 도덕지능은 개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늑대 역시 이런 행동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단체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집단의 룰을 따르지 못하는 동물은 통상 그 그룹에서 쫓겨나거나 혼자 떠돌다 죽을 가능성이 집단 내 다른 동물보다 4배나 높아진다.” “동물이 도덕성을 갖게 된 것은 그렇지 않으면 야생에서 치르는 대가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개나 늑대에게도 도덕지능이 있다는 생물학자의 주장을 떠올려 보니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사건사고나 비리가 더욱 개탄스럽다. 최순실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국정농단, 엘시티 관련 뇌물수수 사건, 어린이 학대 치사 사건, 고위공직자·언론인·정치인 비리, 장애인 노동착취 등의 사건을 보면서 문득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우리 조상들은 왜 이런 표현을 만들고 써 왔을까. 우리는 뭔가 안 좋은 일이나 비하할 상황에는 ‘개’자를 붙인다. 그러나 개도 도덕지능이 있다는 학자의 주장과 함께 인간이 저지르는 여러 악행과 비리를 생각해 보면 안 좋은 일을 개에다 뒤집어 씌워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감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월스트리트발(發)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많은 사람은 윤리경영과 직업윤리를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은 학력에 두뇌는 비상할지 몰라도 윤리성이 마비됐기 때문에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게 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략은 있지만 영혼은 없다.” 금융사고 당시 유행했던 말인데 고급 두뇌들이 금융공학 기법과 온갖 정보를 이용해 투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거래를 거리낌없이 해온 것을 비판한 경구다.

요즘 국가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은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는 ‘부정청탁금지법’까지 발효됐지만 각종 비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윤리 수준은 법과 규정으로 높아질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어느새 사라져 버린 ‘윤리적 잔소리’가 떠오른다. 예전에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윤리적 잔소리가 많았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남의 것에 손대면 천벌을 받는다’ ‘거짓말하면 패가망신한다’…. 이런 잔소리를 할머니에게서도 듣고 부모님에게서도 듣고 선생님에게서도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윤리적 잔소리는 사라지고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을 높이는 소리와 ‘돈이 최고다’라는 배금주의를 부추기는 소리가 더 많아졌다.

인간의 윤리의식은 법과 규정을 만들어 놓거나 ‘윤리경영’ 수업을 듣고 학점을 취득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녹아 있어야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윤리적 잔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우리의 의식과 태도에 윤리가 스며들게 되고 이런 상태가 돼야만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된다. 예로부터 군자나 선비는 혼자 있을 때도 윤리적 자기수양을 최고 덕목으로 여겼다. 이 또한 윤리 수준의 일상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나 늑대가 지닌 도덕지능이 원초적인 것이라면 인간의 도덕지능은 학습을 통해 고도화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일 것이다. 요즘 온갖 비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총체적 난국이라는 절망감도 커지고 있다. 법과 제도도 재정비해야 하지만 잃어버린 ‘윤리적 잔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매일 밥을 먹듯이 윤리도 일상생활 그 자체가 돼야 한다. 문득 언젠가 한 방송국이 펼치던 공익캠페인 슬로건이 떠오른다. “잔소리도 사랑입니다.”

윤은기 <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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