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백두 - 이정록(1964~ )

입력 2016-11-20 18:07 수정 2016-11-21 02:30

지면 지면정보

2016-11-21A2면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백두 - 이정록(1964~ )

엄니께서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는 연세가 되었다
물 한그릇 모시는 데 몸의 삼할을 낮췄다
백두산 본래 높이는 삼천오백여 미터였다
화산이 터지고 팔백 미터쯤 낮아졌다
물 한그릇 모시려고 천불 뽑아냈다
하늘을 품는 일이 쉬운 일이겠는가
얼마나 많은 불길 뿜어내고
엄니는 물 한그릇 얻었나

불길 앙다물고 쭈뼛쭈뼛, 나는
헛물만 출렁이는 천치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中


정화수 떠놓는 나이를 팔순이라고 하자.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도 마지막까지 두손 모아 자식 잘되길 비는 나이다. 몸의 삼할은 닳고 닳았으리라. 백두산 천지-물 한 그릇을 빚기 위해 화산을 터트렸다. 그건 하늘을 모시기 위한 일! 어머니 역시 속이 천불이 나는 일을 숱하게 겪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 유비적인 상상력을 통해 시인은 헛물만 출렁이는 천지에서 제 존재를 엿본다.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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