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 산문집 '치명적…' 출간

입력 2016-11-17 18:29 수정 2016-11-18 03:34

지면 지면정보

2016-11-18A33면

삶에 치명적인 전율이 된 '만남의 상차림'
“만남은 불꽃과 같아서 치명적인 화상을 남긴다. 눈부신 예술가들과의 만남, 자유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도시와, 우울의 습기 자욱했던 정신들과의 만남, 그 모든 만남은 사람의 생을 전환시키는 치명적인 전율이 되기도 한다.”

원로 문정희 시인(69·사진)이 시적 영감을 받았던 순간들을 기록한 산문집 《치명적 사랑을 못한 열등감》(문예중앙)을 냈다. 문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툭하면 짐을 싸 어디론가 떠나기’를 좋아했다. 이렇듯 유목민처럼 살며 마주친 사소하지만 비범한 순간들은 그에게 시작(詩作)의 원천이 됐다. 파블로 네루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프리다 칼로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의 만남도 영감을 줬다. 문 시인은 “나의 열정과 근원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1995년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했을 때였다. 하얗게 눈이 내린 어느 날 아침 문 시인은 뜻밖의 사건으로 이 대학 강사인 한 여배우를 만났다. 이 여배우는 그에게 “당신은 시인이다. 당신이 가진 아티스틱 라이선스(artistic license)가 부럽다!”고 말했다. 아티스틱 라이선스는 문법상 틀린 표현도 시에서는 용인되는 ‘시적 허용’을 뜻하는 말이다. 문 시인은 “길이 없는 곳까지 스스로 자유로이 새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면허증이라는 의미로 들려 특별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날의 기억은 훗날 그로 하여금 ‘생명의 불꽃’을 주제로 시를 여러 편 쓰게 했다고 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과의 인연도 들려준다. 미당은 1965년 고교 3학년이던 문 시인을 백일장 장원으로 뽑아준 심사위원장이었다. 문 시인은 자연스레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해 미당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미당은 2000년 12월 숨을 거두는 날까지 문 시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 시인은 미당을 추모하며 “비애와 절망과 뼈아픈 시대를 살며 모국어의 절정을 단숨에 높인 시의 귀신”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은 군사정권 시절 동료 작가들이 투옥당하며 싸웠을 때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담고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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