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맞아 기존 무역협정의 재검토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분위기다. 오바마 정부가 트럼프 당선 사흘 만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포기를 밝힌 게 그렇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면서 비준 동력도 급속히 약해진 마당이다. 트럼프 취임 100일 과제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나 재협상도 명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여기에 포함이 안 됐다고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과정에서 한·미FTA를 ‘깨진 약속’이라고 한 만큼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다. 트럼프의 두뇌집단으로 불리는 헤리티지재단이 한·미FTA의 완전한 이행을 압박하는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한·미FTA의 폐기는 미국 내에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재협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재협상의 핵심은 헤리티지재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FTA의 완전한 이행 요구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측의 압박이 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미 의회가 한·미FTA와 관련해 그동안 한국 측에 불만을 내보인 부분을 보면 보험 약가 결정과정의 투명성,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의 투명성, 법률시장 개방,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등과 관련한 문제였다. 이 중엔 우리가 봐도 수긍이 가는 점이 적지 않다. 가령 약가 결정이나 공정위 조사는 국내 기업들로부터도 불만을 사는 부분이다. 지식재산권 보호도 마찬가지다. 법률시장 역시 국회에서 이행법안이 통과됐지만 외국로펌 지분을 49% 이하로 제한하며 미국의 항의를 초래한 바 있다. 이런 부분은 미국의 압박 여부를 떠나 한국을 위해서도 마땅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FTA를 맺었으면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이행하는 게 맞다. 안에서 자꾸 시장을 닫으려고 하면 경쟁력만 더 떨어질 뿐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이나 통상압력으로 볼 게 아니라 한국을 위한 구조개혁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게 백번 옳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