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4개 불법행위 기준 마련

생명 경시 고의적 불법행위, 징벌적 위자료 2배로 높여
"위자료 현실화 계기 될 것"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고의적인 범죄로 소비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은 피해자에게 1인당 최대 9억원까지 징벌적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 위자료는 재산상 손해배상이 아니라 정신적 손해배상금을 말한다. 법조계에선 “국가 경제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위자료가 현실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사법 발전을 위한 법관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위자료 산정방안을 확정했다고 24일 발표했다. 법원은 그동안 피해자 과실이 전혀 없는 사망 사고에도 위자료를 최대 1억원까지만 인정했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등 법조 선진국(3억원 수준)과 비교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대법원은 불법행위 유형을 △교통사고 △대형 재난사고 △영리적 불법행위 △명예훼손 등 네 가지로 구분했다. 새 위자료는 3단계로 계산된다. 먼저 기준금액이 있다. 여기에 고의나 중과실 등 특별 가중인자가 있으면 금액이 두 배로 올라간다. 이후 다시 구체적·개별적 참작 사유를 반영해 50% 범위에서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불법행위별 기준금액은 교통사고 1억원, 대형 재난사고 2억원, 영리적 불법행위 3억원, 명예훼손 5000만원(일반)~1억원(중대)이다. 여기에 특별가중인자와 구체적·개별적 참작 사유까지 감안하면 각각 최대 3억원(교통사고), 6억원(대형 재난사고), 9억원(영리적 불법행위), 3억원(명예훼손)까지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특별가중인자는 교통사고는 음주운전이나 뺑소니가 해당된다. 항공기 추락이나 건물 붕괴 등 대형 재난사고에서는 부실한 설계나 시공·제작, 관리·감독에 중대한 주의의무나 안전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영리적 불법행위에서는 사업자의 영리행위로 인한 이익 규모가 현저히 큰 경우 등이, 명예훼손에선 악의적 또는 허위사실인 경우가 특별가중인자다.

그동안 법원의 위자료 인정 금액은 물가상승률에 비해 더디게 증가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사고 유형과 상관없이 1991년 3000만원, 1999년 5000만원, 2008년 8000만원, 2015년 1억원까지 인정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새 위자료 산정 방안은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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