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조업 상식 깬 중국 선전의 혁신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로
3D 프린터·레이저 커터 등 "세상의 모든 부품 구할 수 있어"
외국인 창업자들 몰려들어…미국서 e메일로 설계 보내 제작도

아이디어만 팔았던 개인 창업자, 이젠 제품으로 대기업에 도전

중국 선전 화창베이 거리에 있는 하드웨어 창업 전문 액셀러레이터 핵스(HAX)에서 외국인 창업가가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핵스 제공

소프트웨어와 달리 하드웨어는 창업이 어렵다. 개인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이를 제품화하기 쉽지 않아서다.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까지는 보통 수십차례 시행착오를 거친다. 그만큼 시제품을 여러 번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아성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시제품 하나를 제작하는 데 보통 6개월 이상 걸린다. 1년에 두 번 정도밖에 시제품을 못 만든다. 그사이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자금이 떨어져 문을 닫기 일쑤다.

3차원(3D) 프린터는 이런 제조업의 상식을 깨뜨렸다. 누구든 아이디어가 있으면 3D 프린터로 빠르고 싸게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컴퓨터로 간단히 수정해 다시 3D 프린터로 찍어내면 되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성능 개선도 빨라진다. 미국에서 제품 설계도를 이메일로 보내 중국에서 시제품을 만드는 원격 작업도 가능하다.

중국 선전(深)은 이런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3D 프린터 등 고가 장비를 갖춘 메이커 스페이스(제조공방), 시제품 제작소, 창업 액셀러레이터(창업 지원기업)가 밀집해 있다. 어떤 부품이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화창베이(華强北) 전자상가도 있다. 지난달 28일 선전에서 만난 창업가들은 “웬만한 시제품은 선전에선 2주면 만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하청받은 물건을 생산하던 ‘세계의 공장’에서 창업가들이 혁신적인 하드웨어 제품을 만드는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1위 드론업체 DJI와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업체 비야디(BYD)가 선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홍콩과학기술대 학생이던 왕타오 씨가 기숙사에서 창업한 DJI는 2006년 선전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후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DJI는 “선전에 자리잡은 덕에 세계 최대 부품 공급망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전에 있는 창업 액셀러레이터 핵스(HAX)에도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CNC머신(컴퓨터 제어선반) 등 고가 전문 장비가 즐비하다. 핵스는 6개월에 한 번씩 15개 스타트업 팀을 뽑아 111일 안에 시제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율주행 플라스틱통에 담아 물건을 배달하는 ‘디스패치’, 올바른 자세를 유도하는 스마트 방석 ‘다마’ 등이 이곳에서 탄생한 제품이다.

핵스에선 외국인 하드웨어 창업가들도 자주 눈에 띈다. 벤저민 조프 핵스 이사는 “5분만 걸어가면 화창베이 전자상가에서 세상에 있는 모든 부품을 다 구할 수 있다”며 “실리콘밸리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창업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선전 통계연보에 따르면 선전에 등록된 기업 수는 2011년 41만7531개에서 2014년 84만3977개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35세 이하 창업가 비율이 약 60%에 이른다. 상당수가 하드웨어 스타트업 창업이다.

선전의 첫 제조공방으로 유명한 차이훠(柴火)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만난 개인 개발자 우샤오톈 씨도 창업을 꿈꾸는 미래 기업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생각해낸 스마트홈(사물인터넷을 통해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기술) 기기를 시제품으로 만들었다. 겉보기엔 전기 콘센트에 칩과 센서가 드러난 회로기판을 붙인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자 선풍기나 조명이 켜졌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도 조작이 가능했다. 그는 “이걸 만드는 데 부품값으로 300위안(약 5만원)밖에 안 들었다”며 “비싼 에코(미국 아마존의 스마트홈 시스템)를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개인 창업자가 거대 기업에 도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선전=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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