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필자가 해외에서 장기간 거주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과 일본을 합해 거의 10년간의 해외 거주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의 풍경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이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었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일본도 단독 주택까지는 아니지만 대개는 2층 정도의 빌라 형태 건물에 거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의 도시 풍경은 최소 20층이 넘는 아파트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 층간소음 문제가 자주 등장하고 이웃 간 갈등을 넘어 살인까지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원을 가꿀 수 없고, 애완동물도 키우기 어려운 아파트 생활은 미국이나 일본인의 관점에서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한국인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이 편리함은 경제학적으로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

통신산업에서 쓰이는 용어 중 ‘마지막 마일(Last Mile)’이란 단어가 있다. 어떤 동네에 100가구가 사는데 여기에 전화선을 설치한다고 해보자. 수백마일 떨어진 먼 곳에서 동네 어귀까지 전화선을 끌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동네 어귀부터 100가구에 일일이 전기선을 넣는 마지막 1마일의 공사가 가장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가장 힘든 ‘마지막 마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한 동에 80가구가 산다. 동네 어귀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 현관까지 전화선을 끌어오면 순식간에 80가구에 전화벨이 울린다. 인터넷이나 전기 배선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할 때 마지막 마일에서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미국 텍사스에 드문드문 있는 80가구에 인터넷망을 설치하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한국인은 인터넷 이용뿐 아니라 뭐든지 배달해서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으로도 유명한데 이 또한 아파트로 인해 가능해졌다. 텍사스의 치킨 집에서 새벽 2시에 열 곳에 치킨을 배달하려면 수십~수백마일을 달려야 하지만 한국은 바로 앞 아파트에 배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편리함 때문에 거주하게 된 한국의 아파트는 인터넷과 배달 발달 등을 통해 우리 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