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떠나는 K골프 '개척자들']

'쇼트게임 달인' 위창수 "미국 PGA 준우승만 5차례…아쉽지만 이젠 접어야죠"

입력 2016-10-11 18:13 수정 2016-10-12 02:00

지면 지면정보

2016-10-12A35면

20년간 PGA 무대서 맹활약
미국 돌아가 지도자로 '제2 인생'
'스택&틸트' 스윙 국내 전파
한 시즌 5~6개 대회는 참가
“이젠 떠날 때가 됐다는 느낌입니다.”

‘쇼트게임의 귀재’ 위창수(44·찰리 위·사진)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은퇴를 선언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에선 간간이 미소가 흘렀다.

지난 9일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현대해상최경주인비테이셔널이 열린 경기 용인시 88CC에서 만난 그는 진짜 은퇴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더 망가지기 전에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며 웃었다. 최경주(46·SK텔레콤)와의 친분으로 초청료 없이 출전한 그는 5언더파 공동 20위로 대회를 마쳤다.

위창수는 최경주, 양용은(44)과 함께 2000년대 미국프로골프(PGA) 무대를 휘저은 대표적 ‘K골프 브러더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1996년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로 PGA 무대에 데뷔한 이후 20년간 371경기에 출전해 1030만달러(약 115억원)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그린 주변에서의 정교한 어프로치와 퍼트가 특히 좋았다. 전성기이던 2010년엔 스크램블링(그린 주변 트러블 상황에서 파세이브 하는 능력) 순위가 PGA투어 전체 3위였다. 퍼트도 10~20위권을 오르내렸다. 스윙 처음부터 끝까지 왼쪽 다리에 체중을 모두 싣는 그의 ‘스택&틸트(stack&tilt)’를 따라하는 국내 아마추어 골퍼도 많았다.

문제는 우승이었다. 국내 투어 5승을 포함해 유럽, 아시안투어에서는 9승을 올렸지만 유독 PGA에서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준우승 다섯 번이 전부. 2012년 미국 페블비치에서 열린 AT&T내셔널프로암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회다. 최종일 3타 차 선두로 나선 그는 그날에만 8타를 줄인 필 미켈슨에게 2타 차로 역전당하며 마지막 우승 기회를 놓쳤다. ‘비운의 골퍼’라는 말이 그때 나왔다.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멘탈을 강하게 하려고 명상도 하고 해볼 건 다 해봤는데 아마도 제 한계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골프를 업으로 삼아서 원 없이 쳤으니 행복한 거죠.”

샷이 망가진 게 아닌데도 은퇴를 결심한 배경이 궁금했다. 그는 “짧은 퍼트를 놓치는 등 엉뚱한 실수가 자꾸 나오는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앨라배마에서 열린 바바솔챔피언십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13m짜리 파5홀 버디 기회를 3퍼트 보기로 날렸는데 그때 갑자기 흥미가 확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37년간 한국 국적을 고집해온 그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골프 국가대표를 오래전부터 꿈꿔왔다. 올해 그게 무산되고는 도전할 목표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에 ‘첫 승 소식’을 고대하던 팬은 물론 지인들까지 나서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방향대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골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은퇴 결심 시점에 마침 로스앤젤레스 지역 한 골프장이 티칭프로를 제안했다. 레슨비는 시간당 250달러. 한때 교사를 꿈꾼 그는 “제자들이 하루하루 발전하는 모습에서 강한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창수는 앞으로 한 시즌 5~6개 대회에는 출전할 계획이다.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스승 없이 혼자 악전고투하며 쌓은 투어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일종의 ‘반퇴’를 선택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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