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시해된 국모, 명성황후

입력 2016-10-07 18:08 수정 2016-10-08 04:53

지면 지면정보

2016-10-08A2면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누구든 부정하지 않는 사실은 한 나라의 왕비가 궁에 난입한 외국인에게 시해된 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명성황후는 생애 역시 풍파가 심했다. 1851년 경기 여주에서 민치록의 딸로 태어나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와 살았다. 16세 때인 1866년 고종과 국혼을 올렸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 가문의 세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며느리로 삼았지만,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의 최대 라이벌이 됐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당시엔 신변의 위협을 받아 장호원으로 피신했다가 환궁하기도 했다.

외교적으로 청나라와 러시아 등에 기댔으며 일본과는 적대적 관계였다. 미우라 고로 일본 공사는 1895년 ‘여우사냥’이란 암호의 명성황후 제거 계획을 세우고, 그해 10월8일 경복궁 내 건청궁 옥호루에 일본인 수십명을 잠입시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피살 직후 폐서인됐다가 같은 해 10월 복호됐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선포 후 명성황후로 추존되고 홍릉에 안장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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