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 올여름 폭염이 내년 4, 5월 출산율을 확 떨어뜨리지 않을까. 지난 7~8월 중 열대야(서울 기준)는 무려 34일에 달했다. 8월에만 21일이다. 열대야 최장기록인 1994년의 36일(8월 24일간)에 버금간다. 더워 죽겠는데 부부관계인들 제대로 됐을까. 게다가 전기료 누진제 탓에 에어컨 틀기도 겁나는데.

이런 가설을 통계로 확인하려고 1994년 사상 최고의 폭염 이후 9개월(임신기간) 뒤인 1995년 4~5월 출생아 수를 찾아봤다. 아뿔싸! 1990년대엔 월별 출산통계가 없다는 게 통계청의 답변이다. 대신 연도별 출생아 수로 비교해보자. 1993년 71만5826명에서 1994년 72만1185명으로 늘었다. 1993년은 열대야가 전혀 없던 해다. 하지만 1994년 폭염 이후 1995년엔 71만5020명으로 6165명 줄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무더위가 출산율을 낮춘다고 단언할 순 없다. 1992년에는 열대야가 고작 3일이었는데 1993년 출생아 수는 약 1만5000명 감소했다. 1995년 열대야가 16일에 그쳤지만 이듬해 출생아는 69만명대로 더 줄었다. 다소 부침이 있긴 하지만 2002년부턴 아예 40만명대로 뚝 떨어졌다. 출생아 수 감소는 무더위보다 저출산 태풍의 여파로 봐야 할 것이다. 역시 가설은 가설일 뿐!
그런데 미국에서 기온과 출산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가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경제연구소(NBER)는 앨런 버레카 툴레인대 교수 등 3명의 경제학자가 1931~2010년의 온도 변화와 섹스 빈도를 분석한 논문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화씨 80도(약 26.7도) 이상 무더운 날로부터 약 9개월 뒤 미국 내 출생아 수는 하루평균 1165명 감소(출산율 0.4% 하락)했다. 그 뒤에 출산율이 다시 올랐지만 무더위로 인한 감소폭의 32%만 회복됐다. 특기할 점은 에어컨이 보급된 1970년대 이후엔 그 상관관계가 3분의 1로 뚝 떨어진 것이다. 반면 추위는 상관이 없었다.

한국은 2010년대 들어 열대야가 잦다. 전년 여름 무더위 때 임신된 4~5월 출생아 수를 보면 2012년 약 8만명에서 2013년 7만2300명, 2014년 7만3300명으로 떨어졌다. 임신 시점과 비교하면 2011년은 열대야가 단 4일인 반면 2012년은 20일(역대 4위), 2013년은 23일(역대 3위)이나 됐다. 2014년 여름은 열대야가 6일에 그쳐서인지 작년 4~5월 출생아 수가 7만4600명으로 다소 늘었다.

무더위와 출산율이 무관하진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전기료의 징벌적 누진제를 완화해주는 게 바닥을 기는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지 않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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