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세별곡

입력 2016-10-05 18:14 수정 2016-10-06 01:48

지면 지면정보

2016-10-06A32면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 주택시장을 지탱하고, 서민의 내 집 마련을 견인해온 전세제도가 요즘 들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전세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로 선진국형 주거문화와 주택시장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전세가 가계부채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월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질수요가 여전하고,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전세에 대해 무조건 ‘조기 퇴출 판정’을 내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문명과 황하문명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 팽창기에 미국 일부 주와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도 전세가 통용된 적이 있다. 남미 볼리비아와 인도 일부 지역에선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부동산 전당관습이 정착돼 조선 중기까지 주로 농지전당이 주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외국에 문호가 열리고, 주민 이동을 제한하던 오가작통법이 무너지면서 도시 인구가 급증한 게 주택임대차 목적의 가옥전당이 보편화하는 계기가 됐다. 1906년 의정부령으로 ‘가옥전당규칙’을 제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 전세가 특히 성행한 이유는 제도권 금융이 취약하던 압축 성장기에 전통적인 ‘계 문화’의 연장선에서 집주인에게는 자금 융통의 수단으로, 세입자에게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 겸 임차주택 확보 수단으로 유용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기준으로 자가주택 거주비용을 100으로 봤을 때 전세는 50 내외, 월세는 110 내외로 나타난다고 한다. 전세는 보증금이 집값의 50~70% 수준으로 집값 상승 차익을 집주인과 세입자가 나눠 가지는 구조다. 집값 폭락 시 ‘깡통 전세’ 위험이 있지만 전세보증제도로 보완이 가능하다. 월세는 보증금이 싸지만, 가뜩이나 위축된 민간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또 사회 초년생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대출 건전성이 취약하고 경제 위기 시 충격 흡수도 어렵다.

장기적으로 월세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수요가 실재하고 장점이 많은 전세의 조기 퇴출을 당연시해야 할까. 공공임대주택이라도 전세로 공급해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상향 이동 사다리를 지탱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