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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누구 입니까?

입력 2016-09-28 18:03 수정 2016-09-29 02:09

지면 지면정보

2016-09-29A32면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
몇 달 전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감정원 직원에게 ‘서종대 원장 부임 이후 뭐가 달라졌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모 실장이 “감정원에 근무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고객이 누구인지, 내가 하는 일이 고객이 원하는 일인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공기업은 고객의 요구나 불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고객 이탈이 없고, 그런 관행이 굳어지다 보니 임직원의 머릿속에서 고객 개념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전문경영인들이 지속 경영의 최우선 조건으로 고객 지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는 민간 기업들도 수시로 고객이라는 단어를 망각하는 것 같은데, 경쟁이 없는 공기업은 오죽하겠는가.

20여년 전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했는데 필자가 원장으로 부임하던 2014년에는 7%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간부들에게 원인을 묻자 민간평가업자들의 리베이트 관행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긍이 안 가 필자가 직접 주요 고객들을 만나 들어보니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감정평가를 맡기고 난 뒤 담당자가 누구인지 진행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고, 결과서 제출 기일을 넘기는 일도 다반사이며, 설명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평가한다는 등이다. 간부들에게 그런 불만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대다수가 몰랐다고 했다.
지난 5년간 두 개 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 필자는 ‘그 일이 고객이 원하는 일인지, 고객은 그런 방식으로 해주기는 바라는지’를 따지면서 고객 지향에 집중했다. 그 결과 두 개 공기업 모두 사상 최대 매출과 순익을 달성한 것은 물론 고객만족도도 크게 향상됐다.

감정평가업계의 부당 평가 문제를 시정하고자 정부가 감독제도 개선을 추진했는데, 관련 법안이 4년이나 표류하다가 작년 말 가까스로 통과됐다. 몇몇 의원이 쟁점에 대해 감정평가 업자와 합의를 하든지, 아니면 수수료 인상 등으로 업계를 달래든지 하라며 법안 심의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감정평가 제도의 고객은 국민인데, 감정평가 업자를 주 고객으로 오인해서 나타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런 고객 오인 현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여름 전기료 폭탄 문제는 국민이 아니라 한국전력이나 발전사를 주 고객으로, 한진해운 문제는 화주가 아니라 선사나 대출 은행을 주 고객으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되새겨볼 일이다.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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