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無法)이 만든 불법(不法)…갈 길 없는 1인 교통수단 '퍼스널 모빌리티'

입력 2016-09-23 18:13 수정 2016-09-24 02:23

지면 지면정보

2016-09-24A2면

전동휠·세그웨이 등 '개인용 이동수단' 2년새 3만여대 판매
공원·인도 등서 씽씽 달리지만 관련 법규 없어 모두 '불법'

일본·독일, 미래산업 육성 차원서 허용…국내시장은 중국 기업이 장악

한 시민이 23일 세그웨이를 타고 서울 반포한강공원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한강공원에서 세그웨이 등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는 행위는 불법이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22일 오후 8시께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퇴근 시간이 지나자 전동휠이나 전동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개인형 이동수단)를 탄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자전거도로를 달렸다. 약 30분 동안 전동휠과 전동킥보드 40여대가 자전거도로를 지나갔다. 자전거 다섯 대당 한 대꼴이었다.

공원 곳곳에 ‘전동휠 등 동력기구 운행금지. 위반 시 과태료 5만원 부과’란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과태료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공원 내 퍼스널 모빌리티족 단속에 나서 185건의 실적을 올렸다. 전동휠을 타던 김모씨(28)는 “우리나라에는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불리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합법적으로 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불법인 줄 알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공원이 아니면 탈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족은 2014년만 해도 수백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3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 퍼스널 모빌리티 제조업체인 중국 나인봇 제품만 지난해부터 최소 1만5000대가 팔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동휠이나 전동킥보드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국내에선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관련 법 규정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현행법에선 차도나 인도, 공원에서 탈 수 없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정격출력 0.59㎾ 미만의 원동기를 단 전동휠 등은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인도와 자전거도로에서 운행이 금지된다.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어 차도에서도 탈 수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설령 인증을 거친다 해도 속도가 느리고 안전장치가 없는 전동휠이 차도를 달리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서울시 조례 등에 따르면 도로가 아니라 공원에서 타는 것도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탈 수 있는 곳은 사유지나 공터 정도라는 게 서울시 및 관련 부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선 수년 전부터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를 위한 법제를 마련해놓았다. 일본은 2011년 이바라키현 쓰쿠바시를 특구로 지정해 그 안에선 자유롭게 퍼스널 모빌리티를 탈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본 최대 야외전시장인 도쿄 빅사이트와 요코하마의 가나자와 자연공원 등 주요 공원들도 주행허용 구역으로 지정했다.
독일은 2009년부터 퍼스널 모빌리티를 ‘전기보조 이동수단’으로 분류했다. 면허를 따고 반사등·후미등·경적 등을 달면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용하고 있다. 핀란드도 지난해부터 시속 25㎞ 이하의 세그웨이를 자전거로 정의하고 인도로 다닐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5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규제개혁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무조정실과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자치부, 경찰청 등이 법제 마련에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안전기준은 산업부, 자전거도로 통행 여부는 행자부, 교통법규는 경찰청 등 부처별로 업무가 나뉘어 있다 보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아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통합 규정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며 “11월 이후에나 규제개혁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규 마련이 늦어지면서 사용자는 물론 산업계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이 중국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어서다. 중국 전자기업 샤오미는 지난해 4월 모빌리티 기업의 원조 격인 미국 세그웨이를 인수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의 하나인 1인승 초소형 전기차 분야에선 프랑스 르노와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앞장서고 있다.

오세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로봇공학과 교수는 “모터 등 핵심 부품은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고 주요 특허도 외국이 선점했다”며 “법규 부재가 시장 성장과 기술 발전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 퍼스널 모빌리티

전동휠, 전기자전거, 초소형 전기차 등 전기를 동력으로 하고 1인이 탑승하는 이동수단을 통칭하는 용어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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