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2) 꿈 잃은 사무관들

"기회 오면 옮겨야죠"
고강도 업무보다 힘든 건 숨 막히는 조직문화

인간관계 단절 '세종 생활'
만나는 사람 가족·동기뿐…미혼들 '짝 찾기'도 힘들어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고시에 붙었을 때는 주변에서 ‘과거급제’했다며 난리가 아니었어요. 저도 앞으로의 인생이 ‘한 큐’에 해결되는 줄만 알았죠. 근데 그게 아니더군요.”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5급 국가공무원 공개채용시험(행정고시)에 붙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 대 1을 웃도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낸 300여명에게만 매년 사무관 칭호가 주어진다. 그만큼 ‘국가공인 엘리트’라는 자부심도 크고, 국가 정책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사명감도 강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흔들리는 사무관이 늘었다.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매도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 등이 맞물린 결과다. 한국경제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사무관들의 동요가 포착됐다. ‘이직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고려하겠다’고 대답했다.

◆업무에 놀라고, 월급에 또 놀라고

초임 사무관이 처음 부처에 와서 놀라는 것은 업무 강도다. A사무관은 “공무원들은 맨날 칼퇴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막상 일을 해보니 야근을 밥 먹듯 하게 되더라”며 “월요일 오전에 회의할 때가 많아 일요일에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자신이 맡은 업무가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대통령 역점 추진 사항이 되면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경제부처 B사무관은 “대통령 국정과제 관련 업무를 맡은 적이 있는데 한 달 동안 초과근무만 100시간 넘게 했다”며 “아이가 깨기 전에 출근해 잠든 이후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니 나중에는 나를 낯설어 하더라”고 했다.

민간에 비해 적은 급여도 사무관들의 힘을 빼는 요인이다. C사무관은 “10년 이상 근무한 서기관 선배의 연봉이 나보다 겨우 500만원 정도 많다는 얘기를 듣고 허탈했다”며 “월급이 적다는 건 알고 이 일을 택했지만 가끔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을 보면 씁쓸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직? 당연히 고려하고 있죠”

한국경제신문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사무관 1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앞으로 장·차관이 되는 게 꿈이라고 답한 비율은 14.6%에 그쳤다. 이런 그들에게 이직은 언제든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D사무관은 “예전에는 승진에 밀리거나 개인적 문제로 더 이상 공직에 머무를 수 없을 때만 민간으로 이직했다고 하는데 요새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들도 민간으로 옮기는 분위기”라며 “좋은 기회가 온다면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적은 월급, 여유없는 생활 등 이직을 생각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그중엔 숨 막히는 조직문화를 꼽는 사무관도 적지 않았다. E사무관은 “보고서를 쓸 때 내용보다는 문서 포맷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어 “가장 상위 제목 앞에는 ‘ㅁ’을, 다음 제목 앞에는 ‘ㅇ’을 써야 하고 자간과 장평, 폰트 등도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보고 내용과 관계없이 줄 간격 때문에 혼날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허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F사무관은 “일에 적응할 만하면 다른 부서로 계속 옮겨다니다 보니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동기’만 남은 세종 생활
세종시로 이주한 것에는 만족과 불만족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G사무관은 “서울보다 집값도 싸고 청사와의 거리도 가까워 삶의 질은 확실히 나아졌다”며 “비상시에도 청사에서 무한정 기다릴 필요 없이 집에서 대기해도 된다”고 했다.

인간관계가 좁아진 것은 단점으로 꼽혔다. H사무관은 “서울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 매번 가장 늦게 가서 제일 먼저 나왔더니 언젠가부터는 연락도 잘 안 오더라”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늘었지만 외부 관계는 거의 단절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은 것은 결국 ‘동기’들뿐이다. I사무관은 “야근이 있는 날이면 동기 단체 카톡방에 얘기해 같이 저녁을 먹고 올 때가 많다”고 했다.

미혼 사무관들의 ‘짝 찾기’도 힘들어졌다. J사무관은 “서울에 사는 여자친구와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만나지 못한다”며 “자주 볼 수 없어 서운하다고 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승우/오형주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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