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조상에 대한 예" vs 신세대 "허례허식"

'명절 차례' 인식 엷어져
전통·관례 중시 가족 문화, 실용적 삶 추구로 변화 추세

성균관 관계자
"상다리 휠 만큼 차리기보다 먹을 만큼 간소화가 바람직"
직장인 김모씨(40) 가족은 12일 추석 차례상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장남인 큰형이 가족 ‘카톡방’에서 “차례상 준비에 40만원 들었다”고 하자 김씨를 비롯한 동생들은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길 차례상 음식에 매번 수십만원씩 써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내년부터는 차례를 지내지 말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명절 때마다 차례를 언제까지 지내야 하는지 격론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추석(9월15일)이 다가오면서 차례상 차림 등을 놓고 갈등을 겪는 가족이 늘고 있다. 관습대로 정성을 다해 차례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과 최대한 간소하게 하거나 차례를 지내지 말자는 주장이 맞선다.

대구가 고향인 직장인 최모씨(28) 가족은 이번 추석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서울, 대전 등지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대구 시내 식당에 모여 식사한 뒤 단체로 영화를 볼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는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 등 관행에 따라 차례상을 차렸다. 최씨는 “올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앞으로는 명절 때마다 힘들게 차례를 지내지 마라’고 말한 게 결정적이었다”며 “부모님 세대에서도 ‘명절엔 반드시 차례를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등촌동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모씨(27) 가족은 3년 전부터 명절 가족 모임을 없앴다. 명절 전이나 이후 주말에 가족끼리 모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김씨는 “교통 혼잡이 극심한 명절에 많은 시간을 들여 한 곳에 모이는 게 너무 소모적이라는 데 다들 동의했다”며 “차례상을 차리지 않아도 돼 집안 여성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차례상을 마련하는 가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주도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차례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서울 신림동의 이모씨(80)는 “시대가 바뀌었어도 명절 때 조상에 대한 예는 갖춰야 한다”며 “차례상을 정성껏 차리는 게 자손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서울 갈현동에 사는 김모씨(31)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차례를 올리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며 “간소하더라도 정성껏 차례상을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명절과 차례상 논란에 대해 “가족의 주축이 전통과 관례를 중시하는 기성 세대에서 실용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유교·전통문화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전례위원회는 차례를 지내되 허례허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상용/황정환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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