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점점 부풀어 오르는 이순신 신화

입력 2016-09-11 17:37 수정 2016-09-12 01:07

지면 지면정보

2016-09-12A35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화 ‘명량’에도 이순신이 13척으로 330척을 물리쳤다고 나오는데 《난중일기》에 기록된 왜선은 모두 133척이고 그중 격침된 것은 31척이었다. 쇠사슬(철쇄)을 깔아서 이겼다는 것도 허구다. 영화 ‘성웅 이순신’이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다 그렇다. 그곳 물살이 얼마나 센지 가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 하도 많이 나와서 정설처럼 굳어버린 영웅신화들이 많다. 이순신에 관해서는 더 심하다. 최근 《이순신의 일기》 개정판을 낸 최희동 서울대 교수 등은 “1차 사료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2, 3차 자료에만 의존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난중일기》의 여러 판본과 국역본을 검토하고 이순신의 친필본과 《이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초》를 꼼꼼히 비교해보면 수많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 배가 왜선과 충돌해 깨부수는 영화 장면도 그렇다. 최 교수는 “《난중일기》와 조정에 보내는 보고서에 ‘당파(撞破·쳐서 부수다)’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지금까지는 배끼리 부닥치는 것을 당파로 봤는데 일본 배만 판판이 부서지는 게 가능했을까. 원문을 보면 장거리포로 당파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포격으로 쳐부수다가 나중에 배끼리 부닥치는 전투였다. 초전에 조선 배로 왜선을 깔아뭉개는 식의 연출은 오류다.”
충무공의 최후와 관련해 ‘갑옷을 벗고 일부러 자살했다’는 얘기를 믿는 사람이 많다. 자살설의 근거 중 하나가 ‘한창 싸우는 중에 투구를 벗고 스스로 탄환을 맞고 죽었다(方戰免胄, 自中丸以死)’는 대목이다. 그러나 면주(免胄)는 《춘추》의 고사에 나오는 말로 결사적으로 싸운다는 의미다. 안방준의 ‘노량기사’에 ‘송희립이 (죽은) 이순신의 갑옷과 투구를 벗기고 이를 착용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없는 얘기를 꾸민 유언비어까지 난무한다. 인터넷에 ‘경상도 군졸은 모두 오합지졸이라 하루에 한 놈 목을 쳐야 군율이 보전된다’ 등의 루머가 떠도는데 출처를 《난중일기》라고 버젓이 달고 있다. 전문가들이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없다”고 아무리 밝혀도 소용없다.

역사적 진실이란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무리하게 해석하고 재편집하다 보면 과장과 조작까지 하게 된다. 마르크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도 역사를 소설로 만드는 잘못을 경계하면서 “역사학이 핵물리학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역사가는 의도하지 않게 정치가가 되기 때문이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순신의 진면목을 아는 것과 그를 신격화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다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