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이나 상해·폭행치사 등의 생명권 침해범죄는 무조건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하는 방안을 대법원이 추진 중이라 한다. ‘피고인 신청주의’인 탓에 2011년 8.3%이던 신청률이 지난해 2.6%로 급락하는 등 도입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데 따른 대책이다. 의무화 조치가 시행되면 연 500건이 넘는 국민참여재판이 추가로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도입 이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재판을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시민의 법의식과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다는 취지와 달리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엄정한 법논리 대신 배심원의 감성에 호소하는 일종의 인민재판적 왜곡도 나타나고 있다. 친형 살해 혐의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판결을 받은 청소년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기도 했다. 재판이 여론 정치에 더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소위 ‘나꼼수 재판’이나 ‘안도현 재판’은 특정 배심원들이 당파적이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국민참여재판은 이처럼 적잖은 문제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도해볼 만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 들어 전관예우 판결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최악의 현실 때문이다. ‘정운호 게이트’ 등을 통해 전관예우 비리가 망국적 수준임을 확인한 마당이다. 지금 국민들은 국민참여재판이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전관예우를 뿌리뽑는 데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국민이 27%에 불과하다는 OECD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로 사법개혁은 시급하다. 의무화 대상이 살인 등 생명권 침해범죄로 국한된다면 그동안 지적돼왔던 단점도 희석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배심원의 편견이나 성향에 휘둘리지 않는 전문가의 적절한 조언 등 보완장치다. 국민재판에서는 피고인 지지자들이 방청석을 장악하고 검찰에 야유를 퍼붓는 일조차 생겼다. 재판정을 전관예우의 썩은 냄새로 채우느냐, 다중의 인민재판으로 만드느냐, 참 어려운 문제다. 오죽 법정이 썩었으면 차악의 참여재판을 지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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