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눈

최시영 < 연세유럽연구 명예편집장 >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초한 논리학은 서구 이분법의 전통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나’와 이와는 ‘다른 너’ 그리고 이 둘로 이뤄진 ‘세계’가 그것이다. 여기서 ‘나’는 신의 그늘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원자화된 개인’이다.

막스 베버가 해설한 근대화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확대되는 탈주술화 과정이었다. 현대 질서의 담지자이자 재산권, 사적자치, 자기책임의 원칙이 근간인 근대 민법은 개인의 지배를 상징한다. 권위가 뼈대를 이루는 한국 사회의 집단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더 빈번하게 탐색하는 우리는 서양의 환원 불가능한 개인을 환원 가능한 개인으로 수용했다. 스스로가 아니라 집단 속에서 개인의 존재 근거를 찾는 게 더 익숙한 이유다.
집단 속 권위로 변주되는 ‘나이’와 ‘지위’는 개인의 정체성을 왜곡할 우려가 짙다. 나이의 다소와 지위의 고하가 개인을 형·동생 또는 선·후배로 재규정해 각자 기대되는 역할에 맞게 대응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는 것이다. 소통방식도 경직될 수밖에 없다.

탈권위주의 드라이브를 건 삼성전자가 얼마 전 발표한 새 인사 제도는 시대의 흐름과 호흡을 방해하는 권위의 망령을 떨치려는 시도다. 한 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존대하거나 지위에 상관없이 가급적 동격 대우하자는 게 호칭과 직위 수평화로 압축되는 새 인사 혁신안의 골자다. 이런 수평적 조직 문화는 나이와 지위가 대표하는 권위가 속박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권위의 굴레로부터 해방한다.

자립하는 개인만이 공동체의 생동력(生動力)을 담보한다. 집단 속 권위의 그늘에 갇힌 활력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한국 사회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최시영 < 연세유럽연구 명예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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