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탐욕 끝판왕' 위안스카이

입력 2016-08-19 18:21 수정 2016-08-19 23:53

지면 지면정보

2016-08-20A2면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쑨원의 입, 황싱의 두 다리도 위안스카이 뱃속의 꿍꿍이는 따라잡지 못한다.”

혼돈의 20세기 초. 중국의 미래 지도자를 다투던 세 사람 중 위안스카이가 정권을 장악하자 중국 민간에서 유행한 노래 가사다. 위안스카이는 쑨원과 손잡고 청제국의 문을 닫고 ‘중화민국’을 건설한 주역이었다. 그러나 쑨원을 밀어내고 대총통에 오른 뒤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가 몰락했다.

위안스카이는 1859년 8월20일 허난성 상청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상청 제일의 권세가였지만 수차례 향시에 낙방해 결국 산둥성 군벌에 들어갔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들어와 12년간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청일전쟁 후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1898년 무술정변을 일으켜 서태후의 총애를 얻었다. 1911년에는 신해혁명이 나자 총리대신에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청제국 몰락 후에는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됐다.

이후 국민당을 해산시키고 독재체제를 확립하더니 1915년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중화제국으로 바꿨다. 그러나 동생들까지 관계를 단절하는 등 전국적으로 반대운동이 거세지자 즉위 80여일 만에 하야했다. 수개월 후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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