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산책
롯데그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 1일 오너가의 재산 증여 과정에 법률조언을 해준 국내 한 대형 로펌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로펌에 의뢰인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은 “자료가 그 로펌에만 있어 협조를 구하고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말이 임의제출이지 사실상 검찰이 변호인과 의뢰인 간 기밀을 압수수색 영장으로 빼가는 선례를 남겼다는 게 중론이다. 로펌의 생명은 의뢰인의 기밀 유지다. 로펌이 무방비 상태가 돼버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지 보름이 지났다. 법조계는 의외로 잠잠하다. 인권과 변호사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변협은 “성명서 발표를 고려 중”이라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변회 측은 “변호인과 의뢰인 간 비밀을 보장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연구검토 중”이라며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물론 로펌이 성역은 아니다. 변호사 개인이 죄를 저질렀으면 근무처인 로펌도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다. 로펌이 탈세했다면 수사받아 마땅하다.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5월 홍만표 변호사의 사무실과 자택, 부동산업체 등을 압수수색했을 때 이를 문제 삼은 이는 많지 않았다.

‘로펌이 성역이냐’는 질문은 오히려 논점을 흐릴 뿐이다. 사건의 핵심은 의뢰인이 변호사와 의사소통한 비밀 내용을 검찰이 공권력을 이용해 가져갔다는 것이다. 개인이 공권력 앞에 홀로 서게 됐을 때 마지막까지 보호해주는 최후 보루가 변호인이다. 변호인에게 조력을 받기 위해선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검찰이 이 신뢰 관계에 균열을 일으켰다. 대기업인 롯데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김인선 법조팀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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