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옆에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피 흘리며 싸운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한국전 참전비가 있다. 기념비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문구가 가슴을 울린다. 공원 바닥의 돌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우리의 조국은 일찍이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난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했던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미국은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이어진 한국전쟁에 30만여명의 지상군과 해·공군을 파견했다. 연인원은 178만900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전사·사망자는 3만7000명. 실종과 부상, 포로를 포함한 총 인명피해는 13만7000여명이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옛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을 등에 업고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해 242대의 탱크와 54대의 장갑차, 170대의 전투기, 20만명의 병력을 앞세워 남침을 강행했다. 국군은 무방비 상태였다.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낙동강까지 내려오는 데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해낸 게 바로 요즘 영화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인천상륙작전’이다.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는 작전명으로 추진된 인천상륙작전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인천에서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펼친 상륙작전을 뜻한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결정적인 승기(勝機)를 잡은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비견된다. 맥아더는 치밀한 준비 끝에 작전을 성공했다.

전쟁의 승패는 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한다. 한민족에도 결정적인 전쟁이 몇 차례 있었다. 신라와 당나라 간 벌어진 나당전쟁(670~676), 고려시대 대몽항쟁(1231~1259),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1598) 그리고 한국전쟁(1950~1953)이 대표적이다.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하나로 뭉쳐 나라를 지켜냈다. 4, 5면에서 인천상륙작전과 한국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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