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바꾼 도심 풍경
“무더위로 직장인들은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고, 청계천변을 산책하는 커플들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손님이 너무 없어 에어컨을 켜는 데 드는 전기요금도 아까울 지경입니다.”
서울 관철동 청계천 인근의 한 맥줏집 사장 김모씨(49)는 9일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밤낮없이 계속되는 찜통더위로 청계천변 주변 거리가 썰렁해졌다. 여름철 저녁이면 ‘한국판 옥토버페스트(매년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야외 테이블이 맥주를 찾는 관광객과 직장인들로 붐볐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을지로3가의 노가리 골목도 손님이 줄어 상인들이 울상이다. 평소엔 노상 영업인 ‘야장(밤에 간이테이블을 꺼내놓고 장사하는 시장)’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이날 오후 테이블을 펴며 영업을 준비하던 상인 최모씨(56)는 “시원한 맥주를 꺼내놓아도 금세 미지근하게 식어버릴 정도로 덥다 보니 손님이 평년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가마솥 더위로 비오는 날만큼이나 장사가 안 돼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대형 서점과 은행·증권회사 영업점 등은 ‘도심 피서’를 나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날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100명가량이 사용할 수 있는 초대형 나무테이블과 20여곳에 놓인 300여석의 의자가 책을 읽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은 방문객 수와 매출이 가장 많은 시기지만 올해는 무더위로 사람들이 더 몰리고 있다”며 “하루에 5만명까지 다녀간 날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나 증권사 영업점 등에는 특별한 용무 없이 들르는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 당산동에 있는 한 은행지점의 김모 대리(35)는 “대기번호표도 뽑지 않고 곧장 소파에 자리잡고 앉아 한참 쉬었다 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상담 창구 앞 소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창구 직원은 상담고객 없이 혼자 앉아 있는 우스꽝스러운 광경도 곧잘 보인다”고 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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