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자 공포증

입력 2016-08-07 17:38 수정 2016-08-16 18:16

지면 지면정보

2016-08-08A35면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요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한자를 물어올 때 난감해진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30~40대 초반은 한자를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반면 아이들은 1000만권 이상 팔린 한자 학습만화 ‘마법천자문’ 덕에 한자에 관한 한 부모보다 낫다.

언론도 ‘대략난감’이긴 마찬가지다. 뉴스검색 포털 카인즈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검색해보면 919건의 기사가 뜨지만 ‘환골탈퇴’로도 그 절반이 넘는 476건이 나온다. 골프에서 테니스로 취미를 바꾸면 ‘환골탈테’라는 유머는 웃기기라도 하는데…. 인터넷 포털에선 한술 더 떠 ‘야밤도주’, ‘홀홀단신’, ‘이억만리’ 등이 표준어 행세를 한다.

사무관들이 행정·법률용어의 뜻을 모른다는 실·국장들의 개탄을 들은 게 벌써 10여년 전이다. 결제와 결재를 헷갈려하고 조인식(調印式)을 ‘join식’으로 아는 공무원들이 정책을 입안한다는 얘기다. 기업에선 한자 독음조차 못 하는 직원이 많아 골치다. 심지어 한자로 된 명함을 받으면 뒷면의 영문을 보고서야 상대방 이름을 아는 정도다.

한글 문맹은 사라졌지만 한자 까막눈은 더 늘었다. 한자 문맹은 6차 교육과정(1992~1997년) 때 필수인 한문이 선택과목이 되고, 7차 교육과정(1998~2007년)에서 한문을 제2외국어로 넣었을 때 중·고교를 다닌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소위 ‘이해찬 세대’다. 이들이 사회 중심에 진입하면서 한자 공포증은 더 확산되는 것 같다.
한글의 우수성이야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말의 한자어휘가 7할인데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이 제대로 통할 리 없다. 안중근 의사(義士)를 의사(醫師)인 줄 알아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최근 헌법재판소가 이름 한자를 ‘통상 사용되는 한자(8142자)’로 제한한 것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은 이름 한자를 만들어 썼다. 세종 이도의 도자는 ‘복 도()’, 정조 이산은 ‘셈 산()’이다. 오늘날에도 희귀 한자로 이름을 짓는 게 개인의 자유인지, 아닌지는 논란 여지가 있다.

헌재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 현행 국어기본법의 한글 전용이 위헌이라는 어문교육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 전 총리)의 소송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 5월엔 공개변론까지 들었다. 한자 교육은 1970년 한글전용 정책 이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한자를 몰라도 아무 문제 없다면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자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시키길 기대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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