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 '글로리아'
뉴욕의 한 잡지사 사무실. 딘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게 꿈이다. 켄드라는 그런 딘을 비아냥거리면서도 비슷한 야망을 품고 있다. 이들의 상사인 낸은 유능하지만 남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글로리아는 잡지사에서 가장 오래 일했지만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사무실 옆 자리에 한 명쯤은 앉아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연극 ‘글로리아’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일상적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1막이 일상적이고 표면적인 직장생활을 다소 과장해서 그렸다면, 2막과 3막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무실 왕따’ 글로리아는 충격적 사건을 저질러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동료들은 경쟁적으로 글로리아와 함께한 ‘마지막 15분’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들은 ‘글로리아 사건’으로 입은 트라우마를 경쟁하고, 그 트라우마로 돈을 벌려 한다. 켄드라의 말을 빌리면 인생역전을 위해 “왕따의 인생에 주석처럼 얹혀 살게 된 15분”이다.
극의 전반적인 시선은 지독한 냉소와 비아냥이다. 글로리아에 대한 동료들의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타인의 비극을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 안에 인종, 성별, 세대 갈등, 성소수자 문제, 학벌 등 사회적 편견들을 신랄하고 위트 있게 녹여내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배우들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특징을 잘 살려낸다. 특히 정반대 캐릭터인 글로리아와 낸을 1인 2역으로 표현한 배우 임문희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극중 배경이 변하면서 배우들도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표현하는 듯하다.

3막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영화사 사무실. 글로리아 사건 당시 잡지사에서 일하던 로린이 임시직으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뉴욕 잡지사와 다르지 않다. 왕따에게 관심이 없고, 인턴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이 사무실에서 로린은 변하려 한다. 처음으로 직장 동료에게 맥주 한잔을 제안하며 말한다. “저는 좀 더 존재하고 싶어요.” 이내 시끄러운 사무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자기만의 세상에 들어갔지만 말이다. 연극은 말하는 듯하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 향하는 당신은 이 일상의 비극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당신은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가.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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